주말에 남편이 다녀갔다. 결혼식(피로연) 전 마지막 한국방문이었다.
며칠 뒤 아버지 생신이기도 하여 토요일 저녁에 동생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일요일에는, 오전에 남편의 한국친구 결혼식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결혼식 준비차 몇 군데 들렀다.
월요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오후에 있어서 모처럼 오전시간이 남아서 영화라도 보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보려면 아무래도 일본영화가 좋다.(지난 연말에 왔을 때는 “벼랑위의 포뇨”를 봤다.;;;)
그래서 예매사이트에서 상영중인 일본영화를 찾아봤더니 “굿바이”(일본제목 おくりびと)라는 영화가 있었다.
얼마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여러 가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일본에서도 많이 유명해서 남편도 한번 보고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영관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아트하우스 모모”...? 처음 듣는 영화관인데...
위치를 찾아봤더니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단다.
대학 캠퍼스 안에 영화관이라니... 예술영화관이라고는 하지만 좀 놀라웠다.
어쨌거나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남편에게 한번 쯤 모교를 보여줄 겸 일부러라도 갈 법도 한데, 마침 잘 됐네.

졸업한 지 17년(헉)...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 들어가 본 지 10년...
정문과 이화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소식은 몇 년 전에 들었기에 각오는 했지만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마음이 쓸쓸해질 정도로...
아트하우스 모모는, 정문과 이화교뿐만 아니라 이화광장, 신단수, 휴웃길, 운동장까지 모두 없애고 세운 ECC(Ewha Campus Complex라나 뭐라나)라는 거대한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ECC. 소실점의 끝에 위치한 것이 본관이다.

영화관, 커피숍, 레스토랑, 서점, 휴대폰 통신사 등등... 학교가 아니라 쇼핑몰 같다.
20년 전에는 넓직한 이화광장이 텅 비어 있어 광장 본연의 역할을 했었는데... 10년 전에 가봤더니 자동차들이 꽉 차 있더니, 이제는 캠퍼스 지하 전체가 주차장이 되었고 거기에 자동차가 가득가득 차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대기업의 이름을 붙인 처음 보는 낯선 건물들이 여기 저기 서 있었다. 내가 주로 드나들었던, A동과 B동만 있던 종합과학관은 C동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그나마 옛날과 변함없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강당과 본관이었다.

대강당

본관

이제 이화교의 모습은 마음속에만 남아있겠지...
학교에 애착을 갖거나 소속감을 많이 가진 학생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이화교 만큼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 대학생활 4년의 상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겠지.

아래는 몇 년 전 이화교가 사라질 거라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인터넷에서 구해 놓은 이화교 사진인데...
혹시 이것 말고 다른 사진은 없나 검색해봤지만 “중랑천 이화교”만 잔뜩 나오고 더 이상은 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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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언제 또 다시 이곳에 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을 떠나기 전에 가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대학교는 가봤으니 이제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한 번 가볼까...
옛날에 살던 집도 가보고 싶고...

아 참, 영화는 좋았다.
매우 일본적인 영화였다.
바로 얼마 전(3개월 전) 남편의 이모님이 돌아가셔서 일본 장례식을 보고 오기도 했고, 8년 전 돌아가신 엄마도 생각나서 더욱 각별하게 봤다.
게다가 도입 부분에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도 나온다.(주인공이 첼리스트 출신이라서...)
남편과 만나게 된 것도 알고보면 악기, 오케스트라와 관련되어 있기에 이 장면 또한 남달랐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가끔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때는 죽음에 대해 너무 무지해서 전혀 준비를 못 했고, 그래서 충격도 크고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요즘 “죽음학”이라고 하여 죽음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다.
앞으로 시간이 많아지면 나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사실... 이미 이 분야의 책을 몇 권 사 모아놨다.

지난 설 연휴때 일본에 갔을 때, 예전에 신세를 졌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H교수님과 연락이 닿아서 만나고 왔는데... 그렇게 건강하고 청년같던 H교수님이, 이제 막 환갑을 지났을 뿐인데, 난치병에 걸려 투병중이라고 했다.
2년 생존률이 20%라고 하는데 이미 1년 반이 지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기 때문에 더 이상 후회도 불안도 없다. 나와 만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H교수님은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잘 준비하고 계신 듯 보였다.
이번에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락해보길 잘했다.
어떻게 사는가 만큼이나 어떻게 죽는가도 중요하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영화는 죽음 자체를 논하기보다는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일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런 요즘의 나에게 많을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여담이지만... 시체를 진짜 사람이 연기한 것일까, 아니면 마네킹일까 궁금했는데, 영화의 일본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덕션노트를 보니, 시체 역을 연기할 배우를 오디션을 통해 200명 중에서 선발했다고 한다.
주인공의 첼로연주도 열심히 연습해서 직접 한 것이라고 한다.
상 받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요즘 슬슬 이삿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20년전 학생수첩을 발견, 거기 실려있던 캠퍼스 맵을 올려본다.
       근데 20년전 학생수첩을 이제와서 버리려니 좀 아깝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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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도 캠퍼스 맵 (클릭하면 확대됨)

2009년도 현재의 캠퍼스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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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21:55 2009/03/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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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weetweety 2009/03/17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학교 잘 둘러 보았습니다. 현대화된 공간이 익숙하진 않네요. 예전의 캠퍼스 맵, 너무 낯이 익습니다. 알파님은 선배님?? *^^*

    • PlusAlpha 2009/03/17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의 캠퍼스맵이 낯이 익다는 후배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몇학번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선배인 것 같다고 하시니까...^^)
      박물관이 생기기 전의 더욱 다른 모습의 지도가 실려있는 88년도 학생수첩도 갖고 있습니다만, 인쇄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89년도 사진을 올렸습니다.^^
      현대화된 좋은 건물과 편리한 시설에서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이 부럽고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감출 수 없네요...

  2. 안단테 2009/03/18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사진이 학교 정문인가요? 완전히 달라졌네요..^^ 88동문이셨군요..
    이화교.기차소리.아침에 심포니에서 마시던 커피와 클래식음악... 이제 더이상 볼수도 느낄수도 없네요..

    • PlusAlpha 2009/03/19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 안단테님도 동문이셨군요~ 그렇다면 동기동창이고요!! 새삼스럽지만 더욱 반갑네요.^^
      첫 사진은 정문 들어가자마자 찍은 사진 맞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후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정문 바깥에는 못 나가봤지만요...
      근데 심포니도 없어졌나요?? ㅜㅜ

  3. 슈삐 2009/03/23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동창회하는 분위기군요^^;

    저희 학교는 아니지만, 88년의 이대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요. 친한 친구들이 신촌에 많아서 서울 구석탱이 산골에 있는 울학교는 버려두고 이대앞에서 무지많이 놀았었거든요. 대학교 1학년의 1년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경험했던 시간들 중의 하나이지요^^

    그나저나.. 정말 많이 변했네요.. 저 앞에 안가본지 100년은 된 듯 합니다..ㅡㅡ;;

    • PlusAlpha 2009/04/16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그때 수원에서 통학하는 바람에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직행하느라 학교 앞에서 많이 안 놀았다는...ㅜㅜ
      저보다 슈삐님이 이대앞에서 더 많이 노셨던 건 아닐지...^^

  4. yogiblue 2009/04/16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립니다 플러스 첫방문.
    Midiolin통해서 왔구요.
    저는 미국인이랑 결혼해서 미국산지 한 10년
    바이올린은 지금 10개월들어 갑니다.
    저의 선생님말로는 바이올린은 미쳐야 한다는데. 저도 좀 알고 싶은것 있으면 파고드는 성격인데..
    이곳 내용들을 보니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어요. 일지, 기록들 계속 쓰시는 것이나 내용등. 한국이 일하면서 얼마나 바쁜지 아는데, 저는 연습만으로도 헉헉

    전 86학번이고 이대에도 자주갔었는데 왠지 가깝게 느껴지네요.

    예전에 미디올린 뒤지다가 선생님 반주 파일에 자기가 합연해서 올린 사람이있길래 나보다 두세배데 바이올린에 미친사람이 있구나하면서 그땐 지나갔었죠. 오늘 다시 다른 것들 보다 이곳에 연결되어 왔는데, 정말 연습일지며, 놀라워하고 있읍니다. 대단하시군요. 전 10개월인데 나름 진도도 많이 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alpha님(모두들 그렇게 부르는군요) 의 연주 파일들을 들으니 연습의 세밀함과, 초보였을때도 갖고있는 느낌들이 저와 차원이 다른 것같아요. 전박자와 느낌있는 소리내는것을 요즘 지적받고 있거든요. 어쨌든...두서없이 썼어요. 오늘은 조금보고 가지만 다시와서 배울께 많네요. 그럼..

    • PlusAlpha 2009/04/1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바이올린 처음 시작하던 한때는 바이올린에 반쯤 미쳐 자칭 바이올린 폐인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죠...ㅜㅜ
      그래도 그때 남긴 레슨일지와 연습일지들을 지금도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다니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합니다.
      한동안 바이올린을 잊고 있었는데 yogiblue님 덕분에 다시 바이올린이 그리워지네요.

  5. 신토방 2012/09/17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를 보려고 아트-모모를 찾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화교 등 황폐해진 환경은 가히 충격적이었구요 -.,- 지난한 시대의 광포한 개발독점주의가 결국 이런 식으로 모교에서 기어이 압축된 방점을 찍고야 말았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왔지요.
    고통스럽다고 할 씁슬한 마음으로 원래의 캠퍼스 모습들을 찾아보게 되어요..학교와 세상?시장?을 좀 숨통트이게 띄어 주면서 동시에 연결점이 되는 바로 그 이화교 모습이 사진 속에는 있군요.
    학교 때 매일 몇번은 오가면서도 다리란 늘 여운을 남기는
    곳임을 누구라도 다 알고 있었지요.현재에 있으면서도 현재를 그리게
    하고 뭔가 곰곰 되새기게 하고 또 먼 곳을 응시하게 한다는 것..
    매일 보던 클래스의 교우와 조우하면 아이처럼 미소짓거나
    결론이 애매하던 문제들을 가지고 다리 중간에 서서
    논박하기도 하고 자료집을 들추어내보던 그 영원할 것 같던
    시간들..운동장도 없어지면 안되는 곳이어요!!
    우리 사람에게는 텅빈 곳이 있어야 되죠. 사고를 확장시키고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게 하고.,나도 그곳이 꼭 필요했었죠.
    문제를 풀어야 할 때, 마음을 진정시킬 때.,시야엔 늘 넓은
    공간이 필요한 법이죠.
    이렇게 캠퍼스에 야만적인 개발이 난도질 할 때 학생과 교수진,
    동문들은 완전히 구경꾼 밖에 안되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