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멤버들과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1966년 6월 29일 THE BEATLES 일본방문
출전 '쇼와시대의 일본 대학생 대백과사전' 昭和の大學生大百科 pp.22-23
번역 : PlusAlpha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리버풀 출신의 4인조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에 의해 1962년 결성된 비틀즈. "Please Please Me"로 싱글 전 영국 차트 연속 1위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면서 196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MBE 훈장을 수여받아 실로 세계 최고의 밴드로서 절정기를 맞이했다. 1964년에는 일본에서도 "Meet the Beatles"라는 타이틀의 레코드가 발매되어 초등학생에게도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 비틀즈가 일본에 온다는 소문이 생겨난 것은 1966년 봄의 일이다. 6월에 온다... 8월에 온다...방일 소문은 단지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떠돌다가 6월 방일설이 확정되었다. 4월 27일자 요미우리신문에 6월 방문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존 레논의 문제발언 "비틀즈는 이제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너무나도 유명하며, 일본 방문 결정되고 난 후 공연이 있기까지의 몇 달동안 일본에서 비틀즈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라멘이 한 그릇에 60엔 하던 시절에 A석 티켓 가격이 2100엔 정도였다. 티켓 구입에는 엽서응모에 의한 추첨방식이 채용되었다. 왕복엽서를 보내면 당첨된 사람에게만 회신엽서가 배달되며 그것을 플레이가이드에서 티켓과 교환하는 시스템이었다. 3일간 공연에 추가공연까지 합해 총 5회 공연, 5만석에 24만통의 응모가 있었다. 그밖의 티켓 입수방법으로는 라이온(역주 : 치약, 칫솔, 세제 등의 메이커) 제품에 붙어있는 응모권에 의한 추첨, 일본항공의 패키지 여행 신청, 팬클럽 우선구입 등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비틀즈 공연 견학금지령이 내려지고 당시 수상이던 佐藤榮作가 공적인 자리에서 "비틀즈를 경비하느라 머리가 아프다"라고 발언하는 등, 실로 비틀즈 선풍이 일었다.
공연장으로 선택된 곳은 격조높은 일본부도칸日本武道館Budokan이었는데, 콘서트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부도칸 회장이던 正力松太郞씨는 "페토르인지(역주 : 비틀즈의 일본식 발음은 비-토르즈임.) 뭔지 하는 게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어떻게 그런 녀석들에게 부도칸을 내줄 수 있겠나?"라고 불쾌감을 노출하여 다른 공연장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예정대로 일본 부도칸에서 치러졌다. 그리하여 6월 29일, 비틀즈는 태풍4호의 영향으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다가 새벽 3시를 넘어서야 일본땅에 내려섰다. 그 후, 기자회견을 치르고 나서 다음날부터 사흘간 콘서트를 갖고 7월 4일에는 다음 공연지 필리핀으로 향하는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콘서트 당일에는 경찰관 1900명, 경호원 200명으로 엄중한 경비가 이루어졌는데, "로큰롤 뮤직"으로 막을 연 비틀즈의 연주시간은 불과 30분이었다. 가사를 틀린 존, 열심히 손을 흔들던 조지, 땀을 뚝뚝 흘려가며 "Yesterday"를 열창하던 폴, 긴 머리를 흔들며 드럼을 두드리던 링고. 나중에 매스컴이 남김없이 보도했듯이 그들의 연주는 여성팬들의 비명과 환성에 묻혀버렸지만 닳아 없어질 정도로 레코드를 들어 온 팬들에게는 비틀즈를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런 일이었다. 콘서트 연주에 관해서는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비틀즈는 같은 해 8월의 미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밴드로 변모하여 음악사에 남을 명반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세상에 남겼으니까...
1966년 6월 29일 THE BEATLES 일본방문
출전 '쇼와시대의 일본 대학생 대백과사전' 昭和の大學生大百科 pp.22-23
번역 : PlusAlpha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리버풀 출신의 4인조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에 의해 1962년 결성된 비틀즈. "Please Please Me"로 싱글 전 영국 차트 연속 1위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면서 196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MBE 훈장을 수여받아 실로 세계 최고의 밴드로서 절정기를 맞이했다. 1964년에는 일본에서도 "Meet the Beatles"라는 타이틀의 레코드가 발매되어 초등학생에게도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 비틀즈가 일본에 온다는 소문이 생겨난 것은 1966년 봄의 일이다. 6월에 온다... 8월에 온다...방일 소문은 단지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떠돌다가 6월 방일설이 확정되었다. 4월 27일자 요미우리신문에 6월 방문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존 레논의 문제발언 "비틀즈는 이제 그리스도보다 유명하다"는 너무나도 유명하며, 일본 방문 결정되고 난 후 공연이 있기까지의 몇 달동안 일본에서 비틀즈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라멘이 한 그릇에 60엔 하던 시절에 A석 티켓 가격이 2100엔 정도였다. 티켓 구입에는 엽서응모에 의한 추첨방식이 채용되었다. 왕복엽서를 보내면 당첨된 사람에게만 회신엽서가 배달되며 그것을 플레이가이드에서 티켓과 교환하는 시스템이었다. 3일간 공연에 추가공연까지 합해 총 5회 공연, 5만석에 24만통의 응모가 있었다. 그밖의 티켓 입수방법으로는 라이온(역주 : 치약, 칫솔, 세제 등의 메이커) 제품에 붙어있는 응모권에 의한 추첨, 일본항공의 패키지 여행 신청, 팬클럽 우선구입 등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비틀즈 공연 견학금지령이 내려지고 당시 수상이던 佐藤榮作가 공적인 자리에서 "비틀즈를 경비하느라 머리가 아프다"라고 발언하는 등, 실로 비틀즈 선풍이 일었다.
공연장으로 선택된 곳은 격조높은 일본부도칸日本武道館Budokan이었는데, 콘서트 공연장으로 사용되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부도칸 회장이던 正力松太郞씨는 "페토르인지(역주 : 비틀즈의 일본식 발음은 비-토르즈임.) 뭔지 하는 게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어떻게 그런 녀석들에게 부도칸을 내줄 수 있겠나?"라고 불쾌감을 노출하여 다른 공연장소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예정대로 일본 부도칸에서 치러졌다. 그리하여 6월 29일, 비틀즈는 태풍4호의 영향으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다가 새벽 3시를 넘어서야 일본땅에 내려섰다. 그 후, 기자회견을 치르고 나서 다음날부터 사흘간 콘서트를 갖고 7월 4일에는 다음 공연지 필리핀으로 향하는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콘서트 당일에는 경찰관 1900명, 경호원 200명으로 엄중한 경비가 이루어졌는데, "로큰롤 뮤직"으로 막을 연 비틀즈의 연주시간은 불과 30분이었다. 가사를 틀린 존, 열심히 손을 흔들던 조지, 땀을 뚝뚝 흘려가며 "Yesterday"를 열창하던 폴, 긴 머리를 흔들며 드럼을 두드리던 링고. 나중에 매스컴이 남김없이 보도했듯이 그들의 연주는 여성팬들의 비명과 환성에 묻혀버렸지만 닳아 없어질 정도로 레코드를 들어 온 팬들에게는 비틀즈를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런 일이었다. 콘서트 연주에 관해서는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비틀즈는 같은 해 8월의 미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밴드로 변모하여 음악사에 남을 명반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세상에 남겼으니까...
며칠전 한국을 다녀간 일본 아줌마와 얘기하던 끝에 비틀즈가 인기의 절정에 있던 시절의 얘기가 나왔다. 비틀즈가 일본공연을 하던 그 때 그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는데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일어났다고... 가보고 싶어도 표를 구하지 못해 못갔다고 한다. 라이온 제품을 사서 응모하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비틀즈에 열광하는 소녀들을 보고 불량스럽다며 부모들이 못마땅해 하며 말리곤 했다고 한다. 요즘은 아무도 비틀즈를 보고 불량스럽다고 하지 않지만... 그 무렵 유행하던 굽 높은(앞굽까지 높은) 부츠가 요즘 다시 유행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2002 07 26) --PlusAl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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