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악몽을 꾸었다.
양군이가 화장실 변기 위에 폴짝 뛰어올랐는데 갑자기 변기가 와장창 깨지고 양군이가 정화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끔찍한 꿈이었다.
아무리 개꿈이라지만 무의식의 내 머리가 그런 장면을 상상해 냈다는 것에 오싹했다.
공연 전날 제법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꿈속에서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나에게 다가와 잠을 깨워주는 양군이가 어찌나 고맙던지... (평소 출근할 때 기상하는 시간을 지나서 늦잠을 자고 있으면 언제나 양군이가 와서 나를 툭툭 치면서 깨운다.)

그동안 오케스트라 공연은 아니었지만 공연이라는 것을 전혀 안해본 것도 아니고... 오케스트라 공연은 여러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큰 부담이나 긴장감은 갖지 않았었는데...
아무튼 꿈 때문에 아침부터 마음이 약간 어수선해졌다.
리허설이 오후 3시에 시작될 예정이어서 일찌감치 여유있게 나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빠듯한 시간이 되었다.
공연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두 번을 갈아타야 하기에, 편하게 가려고 집앞에서 신사역까지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 신사역에서 택시를 타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평소 10분정도 기다리면 되는 좌석버스가 기다려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에 있는 버스운행정보 안내 전광판에는 19분 후에나 도착한다고 나타나 있었다.
가끔 그 정보가 맞지 않고 버스가 먼저 오는 경우도 있어서 좀 더 기다려 봤지만 오지 않아서 결국 그제서야 다시 지하철역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리허설에 30분이나 지각을 하고 말았다. 1시간밖에 없는 리허설 중 절반을 빠져 버린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안정되지 않았다. 무대에 앉아서 지나치다 싶게 밝은 조명아래 있으니 그동안 연습했던 것조차 머릿속에서 다 날아가버리고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소리 또한 연습실에서 듣던 소리와 달리, 소리를 내려고 하면 마치 내 소리만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신있게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윈드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곡도 대중적이고 흥겨운 곡이고 윈드의 특성상 소리도 박력있고 연주자들 간에 호흡도 꽤 잘 맞아서 듣기 좋았다.
윈드가 끝나고 나서 인터미션 후에 우리 연주였다.
윈드와 비교되는 조용하고 느리고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곡들...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가 긴장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연습때보다 훨씬 못한 연주가 된 느낌이었다.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게 경황없이 두 곡이 끝났고, 대기실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가 앙코르곡을 한 번 더 연주하고 공연이 끝났다.
나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지 못하니 지휘자님이나 함께 연주한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십 명이 함께 하는 연주라고 나 하나 쯤이야...라고 너무 가볍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정말 깊이 반성했다.


User inserted image

User inserted image

우리 공연모습은 아니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허설 광경


User inserted image

웰빙백수님이 찍어주신 공연장 로비 풍경


공연에 오겠다고 했던 친지, 친구, 동료들이 사정이 생겨서 못오겠다는 연락이 공연 전날 대거 쇄도(?)했기에 날 찾아오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챙겨서 나가보니 생각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반갑고 고마웠다.
뒷풀이가 있어서 날 찾아온 손님들과는 길게 이야기 나누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뒷풀이에서는 그동안 연습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개근상으로 상품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면 늘 그렇듯이 만족감이나 뿌듯함보다는 허탈하고 아쉬운 기분이 컸는데 손님들을 만나고 선물을 받고 나니 우울해지려던 기분이 금세 풀렸다. -.-;;
민망함(?)을 무릅쓰고, 받은 꽃다발을 한아름 끌어안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공연 자체보다는 지난 3개월 반동안의 연습과정,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이 더욱 소중했다. 2007년 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오케스트라 첫 공연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7/04/15 22:37 2007/04/15 22:37

트랙백 주소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Violinholic 2007/04/16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양군이가 꽃을 좋아하다니... 낭만고양이잖슴...

  2. 비밀방문자 2007/04/16 0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PlusAlpha 2007/04/16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글님 감사합니다. (굳이 비밀글로 쓰시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지만 비밀 유지(!)를 위해 답변은 이정도로만...^^;)

  3. 강아지맘 2007/04/16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잉~ 나두 알파님 보구 사라질껄....ㅠㅠ

    아마추어 취미 단체인데 오보에, 호른, 베이스까지 악기가 참 다양한데 놀랐어요.
    어쨌든 첫공연 마치신것 축하드립니다.

    • PlusAlpha 2007/04/16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연장이 너무 복잡하긴 했죠..? ^^
      와 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이렇게 많은걸 보고 저도 놀랐답니다.

  4. 조영준 2007/04/16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나. 수고 많이하셨어요.
    감상문을 보니, 저와 완전 똑같은 경험을 하셨네요. ^^ 진짜 30분가까이 되는시간이 한 1분처럼 후딱 가버립디다. 소리도 거의 내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죠. 그래도 앵콜곡 할때는 신나게 했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 가을에는 더 재밌게, 자신있게 해 보자구요!
    (네이버에서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라고 치니까, 누나 홈페이지가 link로 뜨더군요~)

    • PlusAlpha 2007/04/16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준씨도 수고했어요.
      그래도 죽이 되었건 밥이 되었건 끝내놓고 나니 기분 홀가분하고 상쾌하기도 하네요.^^
      심포니 리허설 구경하다가 찍은 사진 한 장, 미니홈피에 나와있는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보기를...
      TVO홈페이지는 로그인 안한 사람은 공연안내조차도 볼 수 없게 되어 있어서, 공연 며칠 전부터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로 검색해서 이 블로그에 들어온 사람이 꽤 많더군요.

  5. 앤플 2007/04/16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드디어(?) 공연이 마무리 되었군요~
    공연 정말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교육은 늦게 끝나고
    서울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는데, 뭐 한일도 없이 눈이 안떠질 정도로 피곤해서 뒷풀이도 안갔어요. =.=

    뿌듯함이 배어나는 듯 해서 부러워요~
    다음 공연땐 저도 같이 개근상 받을래요~^^*

    축하합니다~

    • PlusAlpha 2007/04/16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습은 열심히 해놓고 공연을 함께하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어요.
      또 다시 가을 공연을 위해 열심히 해봅시다~~ 100% 출석 도전~!

  6. 쿠엄마 2007/04/19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연 잘 마치셨군요...^^
    공연 전 긴장감이 온몸으로 느껴져요..ㅎ
    저같으면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은데,
    역시 언니는...~
    나중에 저희도 볼 수 있겠죠?
    언제 또 공연하시는건가요?
    양군이녀석 꽃다발에 코박고..ㅋㅋㅋ

  7. 앤플 2007/04/20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요즘 많이 바쁘신가봐요~ 간만에 언니랑 선경언니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못 오신것 같더라구요...ㅜ.ㅜ
    주말 잘 쉬시구...5월에 뵈요~^^

  8. 단테 2007/04/2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을 보니,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치신것 같아요!
    꽃다발은 양군이 차지군요.
    이상하게도 제 컴에서는 계속 알파님 웹의 글씨가 깨알같이 보여서,,포스팅 내용이 궁금해죽겠네요..ㅎㅎ
    다른 PC에서 보면 보일것 같은데...ㅠㅠ

    • PlusAlpha 2007/04/25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연장이 관객으로 북적거렸으니 성황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네요.^^;
      글씨크기는 제PC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혹시 텍스트크기 설정이 작게 되어있는지도 모르니 익스플로러 메뉴에서 보기 - 텍스트크기 에서 조절해 보세요.

  9. 단테 2007/04/26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알파님 답글만 복사해다가 확대해보았더니,, 문제 해결!!!!!
    컴퓨터 한지 10년넘었는데 난 아직도 컴맹이군요...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좋은 경험,, 좋은 사람들..
    행복하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