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에서의 추억 3

글모음/생각 2001/04/16 14:37 PlusAlpha
그날도 꼭 오늘 날씨 같았다.
봄 햇살은 포근하고 따사로웠으나 바람이 꽤 불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는 이따금씩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때마다 그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나는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를 낯선 길을
하염없이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이제 난 어떻게 되는건가 하고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금 내가 길을 잃은거란 말이지...
엄마 아빠와 다시는 못만나고 고아원에 가서 살게 되면 어쩌지...?
내가 없어지면 엄마 아빠가 슬퍼하실텐데...

난 그무렵 고아가 되고 고아원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동화책에 등장하는 가엾은 주인공들의 비극의 씨앗은
한결같이 부모를 잃은 것이고
계모나 못된 어른들에게 구박받는 것이었으니까...

눈물이 나왔다.
'아... 울면 안되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 한 푼 없이
엄마가 넣어주신 "가제(거즈) 손수건"만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다.

애써 아까 왔던 길을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무거운 발을 앞으로 옮겨놓을 뿐이었다.

하긴 무척 지쳐있기도 했다.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다다를만큼 많이 걷고난 뒤였으니까.

그날은 입학후 처음 가는 봄소풍날이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얼마 안되는 전교생이 한꺼번에 소풍을 떠났다.
반별로 줄을 맞춰서 꽤 오랜 시간을 걸어갔다.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쳐다보며 걸었다.
6학년이 앞장서고 1학년이 맨 뒤에서 따라갔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뒤쳐졌고, 그래서 바쁘게 걷고 달려야 했다.

어딘지 모를 조그만 야산에 도착하자
다들 김밥을 펼쳐놓고 먹었고
그리고나서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서 교가를 부른 뒤에 해산했다.
보물찾기나 장기자랑 같은 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시한 소풍이었지만
나는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가보는 소풍이었기 때문에
시시하다는 생각 대신에 '소풍은 다 이런건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올 때처럼 줄맞춰서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각자 집에 가라는 것이었다.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나 할머니가 따라왔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나 오빠가 있었다.
엄마와 할머니와 언니오빠와 하나 둘씩 자기가 탈 버스를 타고 떠나버리는데
나는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갖고 있는 돈도 없었다.

다 떠나버리고 나만 남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오던 길을 반대로 걸어가보기로 생각하고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갑자기 어제부터 심한 몸살로 누워있었다.
그래서 어제는 소풍가방과 김밥거리를 사러 아빠와 함께 시장에 다녀왔다.
오늘 아침에는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엄마대신 김밥을 싸주셨다.

어린 딸의 첫 소풍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어도
전교생이 함께, 그것도 걸어서 갈 수 있을만큼 '가까운' 곳으로 간다는 말에
그냥 혼자 보낸 것이었다.
엄마는 이 일을 두고두고 나에게 미안해 하셨다.

누군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간신히 억지로 참으면서
정처없는 발길을 힘없이 옮기고 있을 무렵
멀리서 어렴풋이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엄마...?

자세히 보니 담임선생님이 나를 향해
헐레벌떡 반갑게 달려오고 계셨다.
내 앞에 오시더니 등을 대고는 업히라고 하셨다.
매우 지쳐있던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덥썩 업혔다.

한참 가다보니 내가 안보여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물어봐도 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해서
걱정하면서 나를 찾아 다니셨다고 했다.

꽤 한참을 선생님 등에 업히어 도착한 또 다른 버스정류장.
거기서 우리집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엄마가 오지 않은 나를 걱정해서 같은 동네 아이와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놓으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나를 잘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고 가셨다.

덕분에 나는 엄마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고아원에 보내지지도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노심초사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기껏해야 30분도 안되었을 그 시간동안
얼마나 지독한 절망과 공포를 맛보았던지...
어린 나에게는 정말 가혹한 시간이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역곡에서의 추억.
1976년 4월에 일어났던 일이다.

오늘 점심시간에 밖에 나갔다가 문득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엄마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봄햇살 봄바람이 합쳐지면서
지금의 내 심정이 그때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처럼 엄마가
누워있던 자리를 툭툭털고 일어나
"지연이 왔니...? 어서와라. 힘들었지?" 하고
나를 반갑게 맞아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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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14:37 2001/04/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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