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누군가의 문병을 가 본 일도 거의 없고,
(내 주변에 아픈 사람이 없었다는 다행스런 증거...?)
문병갈 때는 그냥 음료수나 통조림이나 꽃 등을 들고가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몇 차례에 걸친 엄마의 입원을 통해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바람직한 문병객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가능하다면 한 번쯤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가슴 절절한 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퍼부어 준다고 해도 문병을 받는 입장에서는 병실에 직접 발걸음을 옮기는 성의에 비할 수 없다.
환자는 아프니까 잘 모를 것 같지만 사실은 '누가 몇 번 다녀갔는지'를 다 헤아리고 있다...-_-;;

둘째, 사전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지 않는다.

보통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면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수술을 앞둔 환자라면 수많은 검사를 받기 위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고, 수술을 마친 환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운동'(환자용 보행기에 의지하여 병원 복도를 몇바퀴 걸어다니는 일)을 하러 나갔다 와야 한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도 너무 많이 아프거나 피곤해서 누군가 불쑥 찾아오는 것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모처럼 시간내어 어렵게 갔다가 헛걸음하지 않으려면 미리 연락을 해서 시간약속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셋째, 병실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환자는 쉽게 지치며, 옆에서 병간호하는 보호자도 항상 긴장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줄줄이 찾아오는 문병객의 행렬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가 피곤해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넷째, 병명이나 병세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호들갑떨지 않는다.

"엉엉... 건강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이렇게 돼서... 엉엉..."
"이제 어떡하니... 흑흑..."
이건 위로가 아니라 저주이다.
중병을 앓는 환자인 경우는 환자가 안정을 취하고 희망을 갖고 투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환자에게 병명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문병객이 다 폭로(!)해 버려서 의사와 보호자를 난처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에게 걱정을 끼칠만한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희망이 담긴 격려의 인사말을 간단히 끝낸다.

다섯째, 선물보다는 현금이 좋다.

너무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주문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문병객이 들고오는 음료수나 통조림 따위는 전혀 반갑지 않다.
꽃다발...? 더더욱 반갑지 않다. 어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알레르기나 세균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꽃과 화분의 반입을 일체 금지하기도 한다.
병원에 있다보면 입원비 말고도 크고 작은 돈을 지출할 일이 수도 없이 생긴다.
어차피 꽃다발이나 음료수를 사갈 생각이라면 단돈 만 원이라도 그 돈을 현금으로 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효용이 훨씬 높고 환자(와 보호자)는 더욱 고마움을 느낀다.

이상, 바람직한 문병객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정도만 염두에 둔다면 환자에게 훌륭한 매너를 가진 문병객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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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6 17:30 2001/02/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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