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지연 [PLUSALFA]
[곰스크로의 여행] 소설입니다.
드라마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보고 난 감동의 여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설 원문을 찾아나섰습니다.
찾기 어렵더군요.
간신히 한 일본사람이 독일어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놓은 웹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http://www.geocities.jp/doctor_oi/gomsk.html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길래 제가 일본어를 보고 우리말로 번역해봤습니다. 이런 번역을 소위 중역(重譯)이라고 하지요...
급하게 하느라 좀 거칠지만 방금전의 저처럼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올려봅니다. ^^
너무 짧아서 이것이 원본인지 요약본인지 좀 헷갈리네요...
독일어를 공부하신 분이 원본을 직접 번역해서 올려주시면 더욱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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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의 여행
프리츠 오르트만
독->일 번역 doctor oi(홈페이지 http://www.geocities.jp/doctor_oi)
일->한 번역 이지연^^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 아내는 ‘우리동네(고향)’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아내와 나는 아주 우연히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나 자신으로서는 어떻게든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 여기에 있는 한 나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본의아닌 체재(滯在)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아쉽지만 그 일은 매우 어렵다. 그 노력에 대하여 가장 불유쾌한 방해꾼으로 막아서고 있는 사람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내임에 틀림없었다.
우리의 결혼이 불행했다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실은, 서로 존중하고 진정한 애정으로 충만해 있다. 신혼의 행복한 상태는 지나갔다고 해도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감각은 깊고 분명한 것이 되었다. 무조건 함께한다는 이 감각이야말로 우리의 언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생각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좋다.
어릴 때의 일이다. 아버지 무릎 위에서 곰스크 이야기를 들었다. 아득하게 멀리 있는 멋진 도시의 이야기이다. 어른이 되면 언젠가 곰스크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곰스크는 나에게 있어 궁극의 목적이며 숙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곰스크에 가지 않으려면 내 인생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 곰스크에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 되어서는 곰스크에 가고 싶어하던 이유가 어떻든 상관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스크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은 나와 가족에게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불안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 소망을 버릴 수 있었다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고 있다. 그랬다면 온화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다른 가족들처럼 여기에 살 것이고 곰스크가 단순한 단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그런 생각에 반발하고 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자신이 바라는 분명한 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 하는 따위는 과시이거나 허락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나서 바로 곰스크를 향한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아내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기분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는 이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내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 안되는 돈을 다 털어서、지나치게 비싼 감이 있는 표를 손에 넣었다. 곰스크행 특급열차는 일등석밖에 없었던 것이다. 커다란 창문으로는 초원의 풍경이 여유로운 물결처럼 펼쳐지며 미끄러지듯 지나친다.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멀리 있는 회녹색의 언덕 저편에는 수평선이 흔들리고 있다. 차축이 닿는 곳에서 부드러운 진동이 전달되어 온다. 언덕의 물결이 재빠르게 지나감에 따라 인생의 목적지가 다가온다는 자극적인 쾌감으로 가득찬다. 그에 비해 아내는 열차의 진동이 불쾌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흘러가는 풍경뿐이며 정지(靜止)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맞은편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시트에 기대듯이 있었다.
“모두 흘러가네요. 친숙한 것으로부터 멀리 멀리 조금씩 멀어져가요. 이 여행에 종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당신, 소문 말고 그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 어쩌면 어릴 때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셨다는 곰스크라는 것은 다른 것일지도 몰라요.”
[곰스크로의 여행] 소설입니다.
드라마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보고 난 감동의 여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설 원문을 찾아나섰습니다.
찾기 어렵더군요.
간신히 한 일본사람이 독일어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놓은 웹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http://www.geocities.jp/doctor_oi/gomsk.html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길래 제가 일본어를 보고 우리말로 번역해봤습니다. 이런 번역을 소위 중역(重譯)이라고 하지요...
급하게 하느라 좀 거칠지만 방금전의 저처럼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올려봅니다. ^^
너무 짧아서 이것이 원본인지 요약본인지 좀 헷갈리네요...
독일어를 공부하신 분이 원본을 직접 번역해서 올려주시면 더욱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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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의 여행
프리츠 오르트만
독->일 번역 doctor oi(홈페이지 http://www.geocities.jp/doctor_oi)
일->한 번역 이지연^^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 아내는 ‘우리동네(고향)’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아내와 나는 아주 우연히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나 자신으로서는 어떻게든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 여기에 있는 한 나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본의아닌 체재(滯在)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아쉽지만 그 일은 매우 어렵다. 그 노력에 대하여 가장 불유쾌한 방해꾼으로 막아서고 있는 사람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내임에 틀림없었다.
우리의 결혼이 불행했다고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실은, 서로 존중하고 진정한 애정으로 충만해 있다. 신혼의 행복한 상태는 지나갔다고 해도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감각은 깊고 분명한 것이 되었다. 무조건 함께한다는 이 감각이야말로 우리의 언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생각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좋다.
어릴 때의 일이다. 아버지 무릎 위에서 곰스크 이야기를 들었다. 아득하게 멀리 있는 멋진 도시의 이야기이다. 어른이 되면 언젠가 곰스크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곰스크는 나에게 있어 궁극의 목적이며 숙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곰스크에 가지 않으려면 내 인생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 곰스크에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 되어서는 곰스크에 가고 싶어하던 이유가 어떻든 상관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스크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소망은 나와 가족에게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불안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 소망을 버릴 수 있었다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고 있다. 그랬다면 온화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다른 가족들처럼 여기에 살 것이고 곰스크가 단순한 단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그런 생각에 반발하고 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자신이 바라는 분명한 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 하는 따위는 과시이거나 허락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나서 바로 곰스크를 향한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아내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기분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는 이 여행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내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 안되는 돈을 다 털어서、지나치게 비싼 감이 있는 표를 손에 넣었다. 곰스크행 특급열차는 일등석밖에 없었던 것이다. 커다란 창문으로는 초원의 풍경이 여유로운 물결처럼 펼쳐지며 미끄러지듯 지나친다.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멀리 있는 회녹색의 언덕 저편에는 수평선이 흔들리고 있다. 차축이 닿는 곳에서 부드러운 진동이 전달되어 온다. 언덕의 물결이 재빠르게 지나감에 따라 인생의 목적지가 다가온다는 자극적인 쾌감으로 가득찬다. 그에 비해 아내는 열차의 진동이 불쾌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것은 흘러가는 풍경뿐이며 정지(靜止)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맞은편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시트에 기대듯이 있었다.
“모두 흘러가네요. 친숙한 것으로부터 멀리 멀리 조금씩 멀어져가요. 이 여행에 종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어요. 당신, 소문 말고 그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 어쩌면 어릴 때 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셨다는 곰스크라는 것은 다른 것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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