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개X을 밟다
8월 21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짐을 챙겼다. 10시30분 출발이니까 넉넉하게 두 시간 전에 도착하도록 떠나기로 하고 계산해보니 7시30분쯤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가져갈 짐이 많지 않았지만 그냥 여행용 하드트렁크에 챙겨서 끌고가기로 했다. 홍콩이 요즘 세일기간이라 하니 뭔가 쇼핑을 하게 되면 짐이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트렁크를 끌고 집을 나서 공항버스 타는 곳을 향하는 길에, 골목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를 만났다. 차를 피하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는데 발의 느낌이 좀 이상했다. 이런이런. 개X을 밟은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개X이 굴러다니다니...허허. 평소에 동네를 떼로 몰려다니는 개들이 몇 마리 있는데 그넘들 소행이 분명했다. 에이 출발부터 이게 뭐야...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다가 액땜했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개X은 적당히 굳어있었기 때문에 신발에 묻어있지 않고 깨끗하게 떨어졌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잠시후 7시 35분경 602번 인천공항 직행 버스가 도착했는데 빈 자리가 없어서 그냥 보냈다.
5분쯤 뒤에 이번에는 601번 - 김포공항을 들렀다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 버스가 왔는데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무도 타지 않고 그냥 보내길래 나도 타지 않았다.
다시 한 10분쯤 기다려 602번이 도착해서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공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불안했는데 정확히 40분만에 공항청사에 도착했다.
탑승수속을 하고 출국납부권을 사서 바로 출국심사를 받았다. 너무 일찍 온 것 같았다. 별로 면세점에서 살 것도 없고 해서 한시간 이상을 멍청히 앉아 기다리다 탑승했다.
이륙
비행기는 예정된 시각 10시 30분에 정확히 출발했고 약10여분의 활주끝에 이륙했다. Cathay Pacific의 비행기 좌석에는 모두 개인별 액정화면이 장착되어 있고 약 10여가지 채널로 영화등을 방영해주어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는 영어와 중국어 자막만 나오기 때문에 대충 들어가며 화면만 보았다. ^^
기내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있어서 영어를 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륙한지 한시간 후에 기내식이 나왔는데 정확한 메뉴명은 알 수 없고 한국인 승무원이 "생선 밥"과 "닭고기 국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여 닭고기 국수를 선택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고 모두 닭고기 국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생선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지 못했는데, 닭고기 국수는 초록색이 나는 넓적한 파스타형 국수에 스파게티소스 같은 것으로 양념된 닭고기가 얹혀있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쁘띠첼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흡족했다! ^^ 하지만 기내에서 마신 커피는 너무 쓰고 맛이 없었다.
착륙
한국시간으로 13시 30분에 착륙했는데 홍콩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늦기 때문에 현지시각으로 12시 30분이었다. 입국심사 줄이 길어서 한참을 기다렸고 그 덕분에 가방은 기다림 없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1분도 안걸릴 입국심사를 위해 약 1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나와서 바로 환전을 했다. 그동안 갖고 있던 엔화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한국돈 대신 엔화를 가져와서 환전했다. 환율은 100엔당 606불로, 4만엔을 내고 2,424불을 받았다. 사실 갖고 있는 엔화는 조금 더 있었지만 홍콩은 거리에도 환전소가 많다고 들어서 필요할 때 조금씩 더 환전하기로 했다.
Cathay Pacific에서 알려준대로 공항의 Hotel Link 카운터를 찾아가 바우쳐를 내고 티켓을 받았다. 티켓과 함께 큼지막한 스티커를 주면서 가방에 붙여놓으라고 하고는 1시 10분까지 카운터 옆에 모이라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20분정도 남아있어 공항을 한바퀴 돌다가 편의점에서 물을 두 병 샀다. 써클케이 간판이 있는 편의점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영수증이나 봉투에 OK便利店이라고 되어 있었다. 에비앙 500ml 한 병에 8.6불, 자스민향에 꿀맛이 나는 오묘한 맛의 녹차 500ml 한 병에 9불이었다. 비싸다.-.- 영수증을 주지 않길래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 돈이 얼마 들었는지 알려면 영수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어를 처음 써봤다... ^^v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되어 호텔링크 카운터 옆에 가보니 한국사람들 잔뜩과 서양인들 몇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자가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모아 버스타는곳까지 안내했다. 버스타는 곳 앞에서는 각 호텔별로 사람들을 불러 버스에 태웠다.
버스는 약간은 낡은듯 했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은 아니고 넓직해서 괜찮았다. 약 40분쯤 뒤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내가 묵은 호텔은 [Kimberley Hotel(君怡酒店)]이었다. Cathay Pacific의 패키지에는 가격이 약간씩 다른 다양한 호텔이 있고 예약할 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데, 너무나 많은 호텔이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킴벌리 호텔을 선택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 그룹 중에서 가격이 중간쯤 하는 호텔로 고른것이다. 너무 싼 곳은 교통이나 시설에서 뭔가 불편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여러 여행기들을 읽어본 결과 킴벌리 호텔에 대한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은 그럭저럭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솔직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딱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로비가 1층에 있고 넓고 환한 호텔을 선호하는데 이 호텔은 로비까지 두 층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고 로비도 좀 좁고 어두운 감이 있었던 것이다. 객실은 약간 오래된듯한 가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일본에서 다녀봤던 호텔들보다 넓직해서 좋았다. 특히 욕실은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크기가 평균적인 일본 호텔 욕실의 세 배는 되어보였다. 침대 헤드셋에 자명종 장치가 없어서 밤마다 프런트에 전화해서 웨이크업 콜을 부탁해야만 했다.
킴벌리호텔 객실 내부
홍콩의 건물들은 무더운 바깥날씨와는 달리 추울 정도로 냉방이 되어 있었다. 유리창 바깥쪽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이다. 호텔방안의 온도조절기를 보니 15도에 맞춰있었다. 바깥 기온은 31도 정도, 무려 16도의 온도차가 난다. 도저히 적응이 안되어 온도조절기를 20도 근처로 올려놓고 지냈다.
체크인하여 객실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자마자 Cathay Pacific 패키지 승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반나절 무료관광을 예약했다. 로비로 내려가 공중전화를 찾기가 귀찮고, 시내전화 한 통화이기 때문에 그냥 객실에서 전화를 했다. 약간의 긴장을 하며 해야 할 말을 모두 준비해놓고 전화를 했는데 의외로 쉽게 끝났다. 이름과 참가인원수, 묵고있는 호텔과 방 번호를 물어 대답해주었더니 내일 아침 8시 45분까지 Kowloon Hotel 로비에서 모인다고 얘기해주었다.
킴벌리호텔은 홍콩의 지하철인 MTR의 침사초이(尖沙咀,Tsim Sha Tsui)역의 B번 출구에서 5~7분정도 걸린다. 침사초이는 카우룬(九龍,Kow Loon)반도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데 이 근처에 수많은 호텔이 밀집해 있다. 역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가까운 호텔로는 Hayatt Regency, Holiday Inn Golden Mile, Imperial, Kowloon 등이 있고 Peninsula나 YMCA Salisbury도 위치가 좋다. 혹시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역에서 가까운 호텔로 가보고 싶다.
대부분 홍콩의 호텔은 체크인할 때 보증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미 여러 여행기에서 읽은 적이 있고 항공권을 구입할 때도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킴벌리 호텔에서는 800불을 요구했다. 나는 현금이 넉넉한 것 같지도 않고 다 끝난뒤에 800불을 돌려받아 다시 한국돈으로 환전하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아 보증금을 현금 대신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체크아웃할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대신 카드승인을 취소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체크아웃할 때 당연히 취소해주려니 하고 확실하게 확인을 안했더니 체크아웃한 지 5일이 지나도록 카드승인취소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메일과 국제전화로 호텔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서바이벌 잉글리쉬도 간신히 될까말까한 내가 영어로 금전에 관련된 항의까지 하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다려도 신속한 대응을 해주지 않아 결국 Cathay Pacific 항공사 서울지점에 전화해서 이 사정을 설명하자 호텔에 알아보고 연락을 취해주었다.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사과의 메일도 받았고 카드승인도 취소되어 무사히 잘 해결되었다.
옥토퍼스 카드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먼저 MTR(홍콩에서는 subway보다는 MTR이라고 해야 잘 통한다고 한다.)역에 가서 옥토퍼스 카드(Octopus card, 八達通)를 사기로 했다. 옥토퍼스 카드란 서울의 교통카드와 모양과 기능, 그리고 사용법까지 똑같은 카드인데 지하철, 버스는 물론 트램과 페리까지 홍콩내의 거의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카드의 가격은 150불로(더 큰 단위의 카드도 있는 모양이다) 50불은 보증금이고 100불어치를 교통비로 사용할 수 있으며 다 쓰면 충전해서 쓸 수도 있고 카드가 필요없어지면 잔액과 보증금을 모두 환불받을 수 있다. 또한 홍콩의 화폐구조가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홍콩의 버스는 큰 돈을 내도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옥토퍼스 카드의 편리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HMV
지하철역을 나와 길을 거닐다가 유명한 CD shop인 HMV에 갔다. CD와 DVD를 조금 둘러봤는데 엄청나게 비쌌다. CD는 보통 180~200불 정도로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3만원 정도, DVD도 180~230불 정도 하는 것 같았다. 한쪽에 세일이라고 붙여놓은 것들은 최하 20불짜리부터 150불정도까지 있었다. 하지만 20불짜리는 싱글음반이나 서너곡 들어있는 음반, 그리고 악성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것인듯 별로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DVD매장인 3층에 올라갔더니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의 한국말이 쩌렁쩌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태현의 목소리였다. "엽기적인 그녀"가 매장내 대형화면에서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홍콩 사람들은 아예 그 앞에서 자리를 잡고 넋을 잃고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홍콩과 한국이 같은 DVD 지역코드를 쓰기 때문에 괜찮은 DVD타이틀이 있으면 사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자막이 들어있는 것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있어도 비싸서 못샀을 것이다.-.-
세일품목만 진열해놓은 진열대에서 세일가격 85불인 CD 3장을 사고나서 싸다고 아주 흡족해 했는데 나중에 계산해보니 13000~14000원 정도이니 이것도 아주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었다.
혼자 밥사먹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된 것은 낯선 땅에서 길을 잃거나 말이 안통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아니라, 혼자서 어떻게 밥을 사먹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아침밥은 호텔에서 해결한다 쳐도, 여행기간 내내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기도 해야 할텐데 뭔지도 잘 모르는 그나라 메뉴를 혼자 가서 주문해 먹을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기 전에 홍콩 관련 게시판에 혼자 가서 먹어도 무안하지 않을만한 음식점을 소개해달라는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저녁식사로 먹은 태국 카레
스타 페리(Star Ferry)
홍콩에서 꼭 한번쯤은 타봐야 할 교통수단으로 2층버스와 피크트램, 그리고 스타페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페리는 카우룬반도와 홍콩섬을 왕복하는 셔틀 여객선이다. 약 2km 떨어진 카우룬반도와 홍콩섬을 연결하는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시간은 약 8분 걸리고 요금은 1등석이 2.2불, 우리돈으로 350원 정도이다. 스타페리 선착장은 저녁식사를 한 하버시티 앞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옥토퍼스 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센트럴(中環)행 선착장으로 갔다.
페리라고 해서 멋진 여객선을 상상했었는데 타보니 허름한 배였다. ^^ 창문도 없고 난간처럼 되어 있어 그냥 객실의자에 앉아 바닷바람을 쐴 수 있었다. 나는 맨 가장자리 자리에 앉아 바깥을 구경하며 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져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홍콩섬의 멋진 야경을 내다보며 갔다.
스타페리 객실 내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와 피크 트램(Peak Tram)
홍콩섬에 솟아있는 산의 정상을 Victoria Peak, 또는 그냥 Peak라고 한다. 그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의 야경은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백만불짜리 야경이라고 일컬어진다고 한다. 사실 내가 홍콩에 가면서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이기도 하다. 야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어 삼각대까지 일부러 사서 메고 갔다. 스타페리에서 잘 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피크트램을 타는 곳을 찾는데 한참 헤맸다.
가이드북에 보면 페리 선착장에서 피크트램 타는 곳까지 무료셔틀버스도 있고 시내버스도 간다고 했는데 페리에서 내려보니 그에 관한 안내표지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이리저리 다녔는데 다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고 그나마 잘못 가르쳐주어 약 40분 정도를 길을 모른채 헤매고 다녔다. 홍콩사람이 피크트램 타는 곳을 모르다니... 불만이 많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 했다. 서울 거리에서 남산 케이블카 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테니까...
이 버스를 타라, 저쪽 정류장에 가서 타라... 하고 가르쳐주는 여러 사람을 거쳐 마지막으로 물어본 사람이 "여기서는 피크트램 스테이션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는걸로 알고 있다. 걸어서 15분쯤 걸리는데 차라리 걸어가는게 젤 나을거다. 요기 지하도로 길 건너서 가면 된다. 저기 저 높은 빌딩 보이지? 그 빌딩 뒤쪽에 있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래도 이 대답이 가장 믿을만한 것 같다고 판단하여 결국 체념하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한쪽 어깨에는 가방, 한 쪽에는 삼각대를 메고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걸었다. 다행히 큰 건물을 바라보며 걸었기 때문에 이번엔 별로 헤매지 않고 그 빌딩 근처까지 쉽게 도착했고 피크트램 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피크트램 스테이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금은 왕복 30불, 편도 20불인데 나는 옥토퍼스 카드로 20불 편도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오른쪽 창가자리를 잡아야 멋진 야경을 보며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던데 사람이 저렇게 많아서야 좋은 자리 잡기는 다 글렀군. 하고 생각하며 맨 뒤에 서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창가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고 드디어 트램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여학생들은 홍콩사람이었는데 나더러 광동어로 뭐라뭐라 묻는다. 내가 순진무구한(-_-) 표정으로 sorry~? 했더니 영어로 물어본다. "이거 피크에 올라가는거 맞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밖에서 안타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뭐지?" 그런다. 그래서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자리가 없어서 다음 차를 타려는 모양이라고 얘기했다. 흠... 좀 주객이 전도된 상황 아닌가...?
피크트램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해서 의자가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중간쯤 올라가니 드디어 멋진 야경이 보이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과연 멋진 야경이군... 사진으로만 보던 그 장면을 지금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멋있었다. 트램이 꼭대기에 도착해서 내려보니 피크타워라는 건물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서 두 층 정도 계단으로 올라가니 옥상 같은 넓은 전망대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전부 난간에 매달려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순간을 위해 고생하며 메고 온 삼각대를 펼치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이 새 창으로 뜹니다.)
야경감상을 대충 마치고나니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같이 간 사람이라도 있으면 피크타워 앞에 있는 유명한 "카페데코"에 들어가서 지친 다리를 쉬어가며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련만... 아쉽지만 그냥 내려오는수밖에...
내려갈 때는 피크트램 대신 2층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이나 여행기에서 "올라갈 땐 피크트램, 내려갈 땐 버스"를 많이들 추천하는 것을 본 까닭도 있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다리와 발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피크트램 역에서 다시 스타페리 선착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사람들이 가는쪽으로 따라가다 보니 15번 2층버스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버스 앞에는 내가 아는 센트럴(中環)이라는 글씨가 있길래 반갑게 달려갔다. 센트럴까지만 가면 거기서는 호텔까지 찾아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타 운전기사에게 다시 센트럴 스테이션까지 가는 버스인지 확인을 하고 옥토퍼스카드를 찍은 뒤 운전기사 뒤로 나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명당자리로 소문난 2층 맨 앞자리는 잡지 못하고 그냥 중간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바로 출발할건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탔는데 버스는 떠날 생각을 않고 한참을 서있다가 사람들이 차서 빈자리가 거의 없어질 무렵 출발했다.
과연 듣던대로 내려가는 산길은 좁고 가파르고 구불구불했다. 눈짐작으로 보기에는 차선이 우리나라의 차선보다 훨씬 좁아보였다. 버스 한대가 꽉 차서 여유가 없을 정도의 폭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곡예를 하듯 버스는 쏙쏙 잘 빠져나갔다.
올라올 때 피크트램은 8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버스는 꽤 오랜 시간을 내려갔다. 산길을 다 내려가 번화가가 나타나고 지하철역이 보이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런데 버스에서는 영어 안내방송도 없고 전광판에도 광고같은것만 나올 뿐 정류장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옆사람에게 여기가 센트럴 스테이션이냐고 물어봤더니 "No" 하고는 끝이다. 그렇게 물어봤으면 그다음에 자기가 좀 알아서 설명좀 해주지... 쩝... 다시 센트럴 스테이션 가려면 아직 멀었느냐,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물었더니 자기도 센트럴까지 간다고, 한참 더 가야 하는데 센트럴이 종점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타고 있으면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아 다행이네.
MTR (지하철)
드디어 센트럴 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들어갔다. 지하철 내부는 뭐 비슷비슷했다. 우리나라보다 플랫폼이나 환승통로가 넓직넓직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복잡하지 않았다는 점만 빼고는.
홍콩의 지하철은 Kwun Tong, Tsuen Wan, Island, Tung Chung, Tseung Kwan O Lines 등총 4개의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79년에 처음 개통되었다고 한다. 센트럴역은 Tsuen Wan Line과 Island Line이 교차하는 역인데, 호텔이 있는 Tsim Sha Tsui역으로 가려면 Tsuen Wan Line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된다. 하지만 중간에 해저터널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스타페리로 바다를 건너올 때보다 요금이 훨씬 비쌌다(일반 9불, 옥토퍼스카드 7.9불).
객차와 객차 사이에 문이 없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뚫려 있는 점과 의자가 천으로 된 쿠션이 아니라 딱딱한 철제의자라는 점이 특이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찍지 못했다. -.-
지하철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방송을 열심히 해 주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차량과 플랫폼 사이가 벌어져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Mind the gap, please."라고 여러번 강조해서 방송하던 것이 인상에 남았다. (우리나라는...? "Please watch your step."이라고 방송하고 있다...)
첫날 마무리
지하철에서 내리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호텔을 나온 것이 5시경이었으니까 꼬박 다섯 시간을 걸어다닌 셈이었다. 평소에 신고다니던 편한 샌들을 신고 다녔는데도 더이상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발바닥이 많이 아팠다. 운동화를 신고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오늘 밤에 발의 피로를 풀지 않으면 내일도 고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피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탕욕을 하기로 했다. 내 이럴줄 알고 일본에 갔을 때 얻어온 입욕제(入浴劑)를 챙겨왔쥐~ ㅎㅎ. 입욕제를 풀어놓은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있으니 정말 몸과 마음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했다.
씻고나서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해야할 일들을 좀 정리하고나니 12가 다 되었다. 한국시각으로는 1시였다. 내일 아침 반나절 무료관광에 참가하기 위해 8시 45분까지 Kow Loon Hotel에 가야 하므로, 아침에 잠 깨서 조금 뒤척이다 일어날 것까지 계산해서 프런트데스크에 6시 30분에 깨워줄 것을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21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짐을 챙겼다. 10시30분 출발이니까 넉넉하게 두 시간 전에 도착하도록 떠나기로 하고 계산해보니 7시30분쯤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가져갈 짐이 많지 않았지만 그냥 여행용 하드트렁크에 챙겨서 끌고가기로 했다. 홍콩이 요즘 세일기간이라 하니 뭔가 쇼핑을 하게 되면 짐이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트렁크를 끌고 집을 나서 공항버스 타는 곳을 향하는 길에, 골목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를 만났다. 차를 피하느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는데 발의 느낌이 좀 이상했다. 이런이런. 개X을 밟은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개X이 굴러다니다니...허허. 평소에 동네를 떼로 몰려다니는 개들이 몇 마리 있는데 그넘들 소행이 분명했다. 에이 출발부터 이게 뭐야...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다가 액땜했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개X은 적당히 굳어있었기 때문에 신발에 묻어있지 않고 깨끗하게 떨어졌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잠시후 7시 35분경 602번 인천공항 직행 버스가 도착했는데 빈 자리가 없어서 그냥 보냈다.
5분쯤 뒤에 이번에는 601번 - 김포공항을 들렀다가 인천공항으로 가는 - 버스가 왔는데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아무도 타지 않고 그냥 보내길래 나도 타지 않았다.
다시 한 10분쯤 기다려 602번이 도착해서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공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어 불안했는데 정확히 40분만에 공항청사에 도착했다.
탑승수속을 하고 출국납부권을 사서 바로 출국심사를 받았다. 너무 일찍 온 것 같았다. 별로 면세점에서 살 것도 없고 해서 한시간 이상을 멍청히 앉아 기다리다 탑승했다.
이륙
비행기는 예정된 시각 10시 30분에 정확히 출발했고 약10여분의 활주끝에 이륙했다. Cathay Pacific의 비행기 좌석에는 모두 개인별 액정화면이 장착되어 있고 약 10여가지 채널로 영화등을 방영해주어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영화는 영어와 중국어 자막만 나오기 때문에 대충 들어가며 화면만 보았다. ^^
기내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있어서 영어를 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륙한지 한시간 후에 기내식이 나왔는데 정확한 메뉴명은 알 수 없고 한국인 승무원이 "생선 밥"과 "닭고기 국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여 닭고기 국수를 선택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고 모두 닭고기 국수를 선택했기 때문에 생선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지 못했는데, 닭고기 국수는 초록색이 나는 넓적한 파스타형 국수에 스파게티소스 같은 것으로 양념된 닭고기가 얹혀있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쁘띠첼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흡족했다! ^^ 하지만 기내에서 마신 커피는 너무 쓰고 맛이 없었다.
착륙
한국시간으로 13시 30분에 착륙했는데 홍콩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늦기 때문에 현지시각으로 12시 30분이었다. 입국심사 줄이 길어서 한참을 기다렸고 그 덕분에 가방은 기다림 없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1분도 안걸릴 입국심사를 위해 약 1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나와서 바로 환전을 했다. 그동안 갖고 있던 엔화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한국돈 대신 엔화를 가져와서 환전했다. 환율은 100엔당 606불로, 4만엔을 내고 2,424불을 받았다. 사실 갖고 있는 엔화는 조금 더 있었지만 홍콩은 거리에도 환전소가 많다고 들어서 필요할 때 조금씩 더 환전하기로 했다.
Cathay Pacific에서 알려준대로 공항의 Hotel Link 카운터를 찾아가 바우쳐를 내고 티켓을 받았다. 티켓과 함께 큼지막한 스티커를 주면서 가방에 붙여놓으라고 하고는 1시 10분까지 카운터 옆에 모이라고 알려주었다.
시간이 20분정도 남아있어 공항을 한바퀴 돌다가 편의점에서 물을 두 병 샀다. 써클케이 간판이 있는 편의점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영수증이나 봉투에 OK便利店이라고 되어 있었다. 에비앙 500ml 한 병에 8.6불, 자스민향에 꿀맛이 나는 오묘한 맛의 녹차 500ml 한 병에 9불이었다. 비싸다.-.- 영수증을 주지 않길래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 돈이 얼마 들었는지 알려면 영수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어를 처음 써봤다... ^^v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되어 호텔링크 카운터 옆에 가보니 한국사람들 잔뜩과 서양인들 몇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자가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모아 버스타는곳까지 안내했다. 버스타는 곳 앞에서는 각 호텔별로 사람들을 불러 버스에 태웠다.
버스는 약간은 낡은듯 했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은 아니고 넓직해서 괜찮았다. 약 40분쯤 뒤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내가 묵은 호텔은 [Kimberley Hotel(君怡酒店)]이었다. Cathay Pacific의 패키지에는 가격이 약간씩 다른 다양한 호텔이 있고 예약할 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데, 너무나 많은 호텔이 있어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킴벌리 호텔을 선택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 그룹 중에서 가격이 중간쯤 하는 호텔로 고른것이다. 너무 싼 곳은 교통이나 시설에서 뭔가 불편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여러 여행기들을 읽어본 결과 킴벌리 호텔에 대한 평판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은 그럭저럭 괜찮은 호텔이었는데 솔직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딱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로비가 1층에 있고 넓고 환한 호텔을 선호하는데 이 호텔은 로비까지 두 층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고 로비도 좀 좁고 어두운 감이 있었던 것이다. 객실은 약간 오래된듯한 가구로 꾸며져 있었지만 일본에서 다녀봤던 호텔들보다 넓직해서 좋았다. 특히 욕실은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크기가 평균적인 일본 호텔 욕실의 세 배는 되어보였다. 침대 헤드셋에 자명종 장치가 없어서 밤마다 프런트에 전화해서 웨이크업 콜을 부탁해야만 했다.
킴벌리호텔 객실 내부
홍콩의 건물들은 무더운 바깥날씨와는 달리 추울 정도로 냉방이 되어 있었다. 유리창 바깥쪽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이다. 호텔방안의 온도조절기를 보니 15도에 맞춰있었다. 바깥 기온은 31도 정도, 무려 16도의 온도차가 난다. 도저히 적응이 안되어 온도조절기를 20도 근처로 올려놓고 지냈다.
체크인하여 객실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자마자 Cathay Pacific 패키지 승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반나절 무료관광을 예약했다. 로비로 내려가 공중전화를 찾기가 귀찮고, 시내전화 한 통화이기 때문에 그냥 객실에서 전화를 했다. 약간의 긴장을 하며 해야 할 말을 모두 준비해놓고 전화를 했는데 의외로 쉽게 끝났다. 이름과 참가인원수, 묵고있는 호텔과 방 번호를 물어 대답해주었더니 내일 아침 8시 45분까지 Kowloon Hotel 로비에서 모인다고 얘기해주었다.
킴벌리호텔은 홍콩의 지하철인 MTR의 침사초이(尖沙咀,Tsim Sha Tsui)역의 B번 출구에서 5~7분정도 걸린다. 침사초이는 카우룬(九龍,Kow Loon)반도에서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데 이 근처에 수많은 호텔이 밀집해 있다. 역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가까운 호텔로는 Hayatt Regency, Holiday Inn Golden Mile, Imperial, Kowloon 등이 있고 Peninsula나 YMCA Salisbury도 위치가 좋다. 혹시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역에서 가까운 호텔로 가보고 싶다.
대부분 홍콩의 호텔은 체크인할 때 보증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미 여러 여행기에서 읽은 적이 있고 항공권을 구입할 때도 설명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킴벌리 호텔에서는 800불을 요구했다. 나는 현금이 넉넉한 것 같지도 않고 다 끝난뒤에 800불을 돌려받아 다시 한국돈으로 환전하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아 보증금을 현금 대신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체크아웃할 때 보증금을 돌려받는 대신 카드승인을 취소받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체크아웃할 때 당연히 취소해주려니 하고 확실하게 확인을 안했더니 체크아웃한 지 5일이 지나도록 카드승인취소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메일과 국제전화로 호텔에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서바이벌 잉글리쉬도 간신히 될까말까한 내가 영어로 금전에 관련된 항의까지 하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다려도 신속한 대응을 해주지 않아 결국 Cathay Pacific 항공사 서울지점에 전화해서 이 사정을 설명하자 호텔에 알아보고 연락을 취해주었다. 어쨌든 결론을 말하자면 사과의 메일도 받았고 카드승인도 취소되어 무사히 잘 해결되었다.
옥토퍼스 카드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먼저 MTR(홍콩에서는 subway보다는 MTR이라고 해야 잘 통한다고 한다.)역에 가서 옥토퍼스 카드(Octopus card, 八達通)를 사기로 했다. 옥토퍼스 카드란 서울의 교통카드와 모양과 기능, 그리고 사용법까지 똑같은 카드인데 지하철, 버스는 물론 트램과 페리까지 홍콩내의 거의 모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카드의 가격은 150불로(더 큰 단위의 카드도 있는 모양이다) 50불은 보증금이고 100불어치를 교통비로 사용할 수 있으며 다 쓰면 충전해서 쓸 수도 있고 카드가 필요없어지면 잔액과 보증금을 모두 환불받을 수 있다. 또한 홍콩의 화폐구조가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홍콩의 버스는 큰 돈을 내도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옥토퍼스 카드의 편리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HMV
지하철역을 나와 길을 거닐다가 유명한 CD shop인 HMV에 갔다. CD와 DVD를 조금 둘러봤는데 엄청나게 비쌌다. CD는 보통 180~200불 정도로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3만원 정도, DVD도 180~230불 정도 하는 것 같았다. 한쪽에 세일이라고 붙여놓은 것들은 최하 20불짜리부터 150불정도까지 있었다. 하지만 20불짜리는 싱글음반이나 서너곡 들어있는 음반, 그리고 악성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것인듯 별로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DVD매장인 3층에 올라갔더니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의 한국말이 쩌렁쩌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태현의 목소리였다. "엽기적인 그녀"가 매장내 대형화면에서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홍콩 사람들은 아예 그 앞에서 자리를 잡고 넋을 잃고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홍콩과 한국이 같은 DVD 지역코드를 쓰기 때문에 괜찮은 DVD타이틀이 있으면 사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한국어자막이 들어있는 것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있어도 비싸서 못샀을 것이다.-.-
세일품목만 진열해놓은 진열대에서 세일가격 85불인 CD 3장을 사고나서 싸다고 아주 흡족해 했는데 나중에 계산해보니 13000~14000원 정도이니 이것도 아주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가격이었다.
혼자 밥사먹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된 것은 낯선 땅에서 길을 잃거나 말이 안통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아니라, 혼자서 어떻게 밥을 사먹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아침밥은 호텔에서 해결한다 쳐도, 여행기간 내내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기도 해야 할텐데 뭔지도 잘 모르는 그나라 메뉴를 혼자 가서 주문해 먹을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기 전에 홍콩 관련 게시판에 혼자 가서 먹어도 무안하지 않을만한 음식점을 소개해달라는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다.
1. 침사추이에 있는 ocean center(canton road 에)안에 보면 city super(3층)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삼성 coex에 있는 food court와 유사 합니다. 거기에 혼자 먹는 사람들도 많고 음식 종류도 많으니 먹을 때 절대 안 외롭습니다.
2. 깜종 ( admiralty ) 에 보면, pacific place 라고 백화점 있습니다. 거기 지하에 great라고 food court있습니다. 거기도 삼성 coex와 유사합니다.
3. causeway bay 에 time square 에 보면 거기에도 city super 있습니다.
첫날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서 추천받은 시티수퍼의 푸드코트를 찾아갔다. Ocean Center내 Habour City라는 대형 쇼핑몰 안에 있었다. 과연 듣던대로 괜찮았다.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중국, 태국, 일본, 인도, 한국, 양식 등등)을 파는 코너가 늘어서 있는데, 진열대에 사진이나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면 그것을 보고 주문을 하고 전표를 받아 계산대에 가서 계산하고 영수증을 보여주고 음식을 가져다 먹는 방식이다. 나는 태국요리코너에서 태국식 카레 세트를 주문했다. 46불로 좀 비싼 감이 있었고 '홍콩에 왔으면 홍콩요리를 먹어야지 무슨 태국요리야'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태국요리를 전부터 먹고 싶었고 한국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이걸 먹기로 했다.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전에 태국요리를 딱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고 그때도 참 맛있게 먹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태국요리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카레라고는 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카레의 모양이나 맛과는 전혀 달랐다. 향신료맛이 좀 강하긴 하지만 태국요리는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았다. 2. 깜종 ( admiralty ) 에 보면, pacific place 라고 백화점 있습니다. 거기 지하에 great라고 food court있습니다. 거기도 삼성 coex와 유사합니다.
3. causeway bay 에 time square 에 보면 거기에도 city super 있습니다.
저녁식사로 먹은 태국 카레
스타 페리(Star Ferry)
홍콩에서 꼭 한번쯤은 타봐야 할 교통수단으로 2층버스와 피크트램, 그리고 스타페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스타페리는 카우룬반도와 홍콩섬을 왕복하는 셔틀 여객선이다. 약 2km 떨어진 카우룬반도와 홍콩섬을 연결하는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시간은 약 8분 걸리고 요금은 1등석이 2.2불, 우리돈으로 350원 정도이다. 스타페리 선착장은 저녁식사를 한 하버시티 앞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옥토퍼스 카드로 요금을 지불하고 센트럴(中環)행 선착장으로 갔다.
페리라고 해서 멋진 여객선을 상상했었는데 타보니 허름한 배였다. ^^ 창문도 없고 난간처럼 되어 있어 그냥 객실의자에 앉아 바닷바람을 쐴 수 있었다. 나는 맨 가장자리 자리에 앉아 바깥을 구경하며 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져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올 것 같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홍콩섬의 멋진 야경을 내다보며 갔다.
스타페리 객실 내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와 피크 트램(Peak Tram)
홍콩섬에 솟아있는 산의 정상을 Victoria Peak, 또는 그냥 Peak라고 한다. 그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의 야경은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백만불짜리 야경이라고 일컬어진다고 한다. 사실 내가 홍콩에 가면서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이기도 하다. 야경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어 삼각대까지 일부러 사서 메고 갔다. 스타페리에서 잘 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피크트램을 타는 곳을 찾는데 한참 헤맸다.
가이드북에 보면 페리 선착장에서 피크트램 타는 곳까지 무료셔틀버스도 있고 시내버스도 간다고 했는데 페리에서 내려보니 그에 관한 안내표지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좀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 이리저리 다녔는데 다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고 그나마 잘못 가르쳐주어 약 40분 정도를 길을 모른채 헤매고 다녔다. 홍콩사람이 피크트램 타는 곳을 모르다니... 불만이 많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 했다. 서울 거리에서 남산 케이블카 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제대로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테니까...
이 버스를 타라, 저쪽 정류장에 가서 타라... 하고 가르쳐주는 여러 사람을 거쳐 마지막으로 물어본 사람이 "여기서는 피크트램 스테이션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는걸로 알고 있다. 걸어서 15분쯤 걸리는데 차라리 걸어가는게 젤 나을거다. 요기 지하도로 길 건너서 가면 된다. 저기 저 높은 빌딩 보이지? 그 빌딩 뒤쪽에 있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래도 이 대답이 가장 믿을만한 것 같다고 판단하여 결국 체념하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한쪽 어깨에는 가방, 한 쪽에는 삼각대를 메고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걸었다. 다행히 큰 건물을 바라보며 걸었기 때문에 이번엔 별로 헤매지 않고 그 빌딩 근처까지 쉽게 도착했고 피크트램 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피크트램 스테이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금은 왕복 30불, 편도 20불인데 나는 옥토퍼스 카드로 20불 편도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내려올 때는 버스를 타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오른쪽 창가자리를 잡아야 멋진 야경을 보며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던데 사람이 저렇게 많아서야 좋은 자리 잡기는 다 글렀군. 하고 생각하며 맨 뒤에 서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창가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고 드디어 트램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여학생들은 홍콩사람이었는데 나더러 광동어로 뭐라뭐라 묻는다. 내가 순진무구한(-_-) 표정으로 sorry~? 했더니 영어로 물어본다. "이거 피크에 올라가는거 맞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밖에서 안타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뭐지?" 그런다. 그래서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자리가 없어서 다음 차를 타려는 모양이라고 얘기했다. 흠... 좀 주객이 전도된 상황 아닌가...?
피크트램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해서 의자가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중간쯤 올라가니 드디어 멋진 야경이 보이고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과연 멋진 야경이군... 사진으로만 보던 그 장면을 지금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멋있었다. 트램이 꼭대기에 도착해서 내려보니 피크타워라는 건물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서 두 층 정도 계단으로 올라가니 옥상 같은 넓은 전망대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전부 난간에 매달려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순간을 위해 고생하며 메고 온 삼각대를 펼치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이 새 창으로 뜹니다.)
야경감상을 대충 마치고나니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같이 간 사람이라도 있으면 피크타워 앞에 있는 유명한 "카페데코"에 들어가서 지친 다리를 쉬어가며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련만... 아쉽지만 그냥 내려오는수밖에...
내려갈 때는 피크트램 대신 2층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가이드북이나 여행기에서 "올라갈 땐 피크트램, 내려갈 땐 버스"를 많이들 추천하는 것을 본 까닭도 있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다리와 발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피크트램 역에서 다시 스타페리 선착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사람들이 가는쪽으로 따라가다 보니 15번 2층버스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버스 앞에는 내가 아는 센트럴(中環)이라는 글씨가 있길래 반갑게 달려갔다. 센트럴까지만 가면 거기서는 호텔까지 찾아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타 운전기사에게 다시 센트럴 스테이션까지 가는 버스인지 확인을 하고 옥토퍼스카드를 찍은 뒤 운전기사 뒤로 나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명당자리로 소문난 2층 맨 앞자리는 잡지 못하고 그냥 중간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바로 출발할건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가서 탔는데 버스는 떠날 생각을 않고 한참을 서있다가 사람들이 차서 빈자리가 거의 없어질 무렵 출발했다.
과연 듣던대로 내려가는 산길은 좁고 가파르고 구불구불했다. 눈짐작으로 보기에는 차선이 우리나라의 차선보다 훨씬 좁아보였다. 버스 한대가 꽉 차서 여유가 없을 정도의 폭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곡예를 하듯 버스는 쏙쏙 잘 빠져나갔다.
올라올 때 피크트램은 8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버스는 꽤 오랜 시간을 내려갔다. 산길을 다 내려가 번화가가 나타나고 지하철역이 보이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런데 버스에서는 영어 안내방송도 없고 전광판에도 광고같은것만 나올 뿐 정류장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옆사람에게 여기가 센트럴 스테이션이냐고 물어봤더니 "No" 하고는 끝이다. 그렇게 물어봤으면 그다음에 자기가 좀 알아서 설명좀 해주지... 쩝... 다시 센트럴 스테이션 가려면 아직 멀었느냐,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물었더니 자기도 센트럴까지 간다고, 한참 더 가야 하는데 센트럴이 종점이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타고 있으면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아 다행이네.
MTR (지하철)
드디어 센트럴 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들어갔다. 지하철 내부는 뭐 비슷비슷했다. 우리나라보다 플랫폼이나 환승통로가 넓직넓직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복잡하지 않았다는 점만 빼고는.
홍콩의 지하철은 Kwun Tong, Tsuen Wan, Island, Tung Chung, Tseung Kwan O Lines 등총 4개의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79년에 처음 개통되었다고 한다. 센트럴역은 Tsuen Wan Line과 Island Line이 교차하는 역인데, 호텔이 있는 Tsim Sha Tsui역으로 가려면 Tsuen Wan Line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된다. 하지만 중간에 해저터널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스타페리로 바다를 건너올 때보다 요금이 훨씬 비쌌다(일반 9불, 옥토퍼스카드 7.9불).
객차와 객차 사이에 문이 없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뚫려 있는 점과 의자가 천으로 된 쿠션이 아니라 딱딱한 철제의자라는 점이 특이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찍지 못했다. -.-
지하철에서는 중국어와 영어방송을 열심히 해 주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차량과 플랫폼 사이가 벌어져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Mind the gap, please."라고 여러번 강조해서 방송하던 것이 인상에 남았다. (우리나라는...? "Please watch your step."이라고 방송하고 있다...)
첫날 마무리
지하철에서 내리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호텔을 나온 것이 5시경이었으니까 꼬박 다섯 시간을 걸어다닌 셈이었다. 평소에 신고다니던 편한 샌들을 신고 다녔는데도 더이상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발바닥이 많이 아팠다. 운동화를 신고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오늘 밤에 발의 피로를 풀지 않으면 내일도 고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최대한 피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탕욕을 하기로 했다. 내 이럴줄 알고 일본에 갔을 때 얻어온 입욕제(入浴劑)를 챙겨왔쥐~ ㅎㅎ. 입욕제를 풀어놓은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있으니 정말 몸과 마음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 했다.
씻고나서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해야할 일들을 좀 정리하고나니 12가 다 되었다. 한국시각으로는 1시였다. 내일 아침 반나절 무료관광에 참가하기 위해 8시 45분까지 Kow Loon Hotel에 가야 하므로, 아침에 잠 깨서 조금 뒤척이다 일어날 것까지 계산해서 프런트데스크에 6시 30분에 깨워줄 것을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랜만에 들렸네요...
예전 98년,2001년도에 홍콩 다녀온 생각이
새록새록하네요...
암튼 잼있게 보고 갑니다..
한주의 시작 이네요....
파이팅 하시고.....바욜린도 열심히 하세요...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