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다시 기억되고 있는 모양이다.
잊혀진계절은 내내 잊혀져 있다가 1년에 단 하루 반짝 하고 나타난다.
세상에는 영원히 잊혀지고 마는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잊혀진계절, 그래도 너는 행복한 노래다.
이 "잊혀진 계절"과 F.R.David의 "Words"라는 노래를 듣거나 떠올릴때면 나도모르게 중학교 2학년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 때 한창 인기를 얻었던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렵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조용필과 이용이 최고의 우상이었다. '조용필 파'와 '이용 파'가 서로 조용필이 잘났느니, 이용이 잘났느니 하고 말다툼을 벌이던 장면을 목격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용 쪽이 좋았다. 이상하게도 남들은 좋기만 하다는 조용필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그의 노래의 멜로디가 내게는 꼭 세상 살만큼 다 살고난 노인네의 탄식소리처럼 들려서 별로였다. 한참 뒤 나이를 먹고 나서야 조용필이 명가수는 명가수구나 하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이 용을 아주 좋아한건 아니다. 그저 조용필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했을 뿐, 마구 소리질러대는 열성 팬은 못되었다.
1983년. 최악의 해.
바로 전 해에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일까, 이 시기는 너무너무 힘들고 고달픈 기억만이 남아있다.
단순 무식의 극치, 내가 보낼 수 있는 모든 조소와 경멸을 다 쏟아부어도 충분치 않을 담임 김OO.
감히 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원망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는지...
내가 너무 바보같았거나 너무 착했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그가 나를 미워한 이유는 돈봉투를 제대로 갖다 바치지 못하는 못난 반장이라는 점이었다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런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집으로 전화해서 엄마에게 야단치고 골낸 적도 있다 한다.
모든 애들이 다 있는 앞에서 '반장 자격'을 따진 적도 있고, 인간쓰레기 운운한 적도 있다.
내가 평생 받은 수모와 정신적 고통의 80%는 그때 받은 것이다.
종례시간이 되어도 교실에 올라오지 않는 담임을 찾아가는 곳은 교무실이 아니라 양호실이었다. 그 여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양호실 침대에서 퍼질러지게 낮잠자고 있는 모습과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애들을 때리는 장면이다.
결정적으로 그 사람의 교사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건은 학기말에 일어났는데...
(아무리 솔직한 자기고백이라 해도 이런 말을 여기다 써도 되는지 잠시 갈등하고 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될 반 학생들의 행동발달사항 내용의 작성을 학생 손에 맡겼다는건 교단을 떠나게 할 수도 있을만큼 엄청난 일 아닐까...?
결국 2학기 늦가을쯤에는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위염'의 진단을 받았다. 매일 먹기만 하면 체해서 손가락 따고 토하는 것이 일과였다.
아참... 그때 전국소년체전인지... 그 비슷한 큰 체육행사가 수원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학교 1,2학년 전체가 매스게임에 동원되었다. 두 달은 족히 될 것 같은 연습기간중 하루도 빠짐없이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운동장을 헤매고 굴렀다.
덕분에... 몸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그렇게 좋아하고 열심히 연습하던 피아노도 그만두었다. 힘드니까 당분간 쉬겠다고 한 것이 영영 쉬게 되고 말았다.
뭐.. 인생이란게 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시기에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은 박치숙 선생님의 국어시간과 미술실에서 맡던 테레핀인지 테레빈인지 하는 유화 기름의 송진냄새였다.
2학기부터인가...국어시간은 항상 윤선도의 오우가를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6절까지 있는데... 그 다음은 다 잊어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도...-_-
미술선생님은 매우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이면숙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한테서 사군자를 배웠다. 나는 난초와 대나무만을 연습했는데... 그 해 특별활동 전시회인가를 하느라고 표구했던 내 작품(!)이 아직도 우리집 벽에 걸려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묵향보다는 옆에서 맡던 유화 기름 냄새가 떠오른다... 요즘은 좀처럼 맡기 어려운 그 냄새...
그래도 시간이 모든 걸 아름답게 만들어주는구나...
약간은 바랜 빛으로... 뾰족뾰족 날카로웠던 모서리는 둥글둥글 깎이고 닳은 상태로 보여준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계절의 모습을...
잊혀진계절은 내내 잊혀져 있다가 1년에 단 하루 반짝 하고 나타난다.
세상에는 영원히 잊혀지고 마는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잊혀진계절, 그래도 너는 행복한 노래다.
이 "잊혀진 계절"과 F.R.David의 "Words"라는 노래를 듣거나 떠올릴때면 나도모르게 중학교 2학년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 때 한창 인기를 얻었던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렵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조용필과 이용이 최고의 우상이었다. '조용필 파'와 '이용 파'가 서로 조용필이 잘났느니, 이용이 잘났느니 하고 말다툼을 벌이던 장면을 목격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용 쪽이 좋았다. 이상하게도 남들은 좋기만 하다는 조용필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그의 노래의 멜로디가 내게는 꼭 세상 살만큼 다 살고난 노인네의 탄식소리처럼 들려서 별로였다. 한참 뒤 나이를 먹고 나서야 조용필이 명가수는 명가수구나 하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이 용을 아주 좋아한건 아니다. 그저 조용필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했을 뿐, 마구 소리질러대는 열성 팬은 못되었다.
1983년. 최악의 해.
바로 전 해에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일까, 이 시기는 너무너무 힘들고 고달픈 기억만이 남아있다.
단순 무식의 극치, 내가 보낼 수 있는 모든 조소와 경멸을 다 쏟아부어도 충분치 않을 담임 김OO.
감히 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원망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는지...
내가 너무 바보같았거나 너무 착했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그가 나를 미워한 이유는 돈봉투를 제대로 갖다 바치지 못하는 못난 반장이라는 점이었다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런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집으로 전화해서 엄마에게 야단치고 골낸 적도 있다 한다.
모든 애들이 다 있는 앞에서 '반장 자격'을 따진 적도 있고, 인간쓰레기 운운한 적도 있다.
내가 평생 받은 수모와 정신적 고통의 80%는 그때 받은 것이다.
종례시간이 되어도 교실에 올라오지 않는 담임을 찾아가는 곳은 교무실이 아니라 양호실이었다. 그 여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양호실 침대에서 퍼질러지게 낮잠자고 있는 모습과 막대기가 부러지도록 애들을 때리는 장면이다.
결정적으로 그 사람의 교사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건은 학기말에 일어났는데...
(아무리 솔직한 자기고백이라 해도 이런 말을 여기다 써도 되는지 잠시 갈등하고 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될 반 학생들의 행동발달사항 내용의 작성을 학생 손에 맡겼다는건 교단을 떠나게 할 수도 있을만큼 엄청난 일 아닐까...?
결국 2학기 늦가을쯤에는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위염'의 진단을 받았다. 매일 먹기만 하면 체해서 손가락 따고 토하는 것이 일과였다.
아참... 그때 전국소년체전인지... 그 비슷한 큰 체육행사가 수원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학교 1,2학년 전체가 매스게임에 동원되었다. 두 달은 족히 될 것 같은 연습기간중 하루도 빠짐없이 흙먼지를 뒤집어써가며 운동장을 헤매고 굴렀다.
덕분에... 몸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그렇게 좋아하고 열심히 연습하던 피아노도 그만두었다. 힘드니까 당분간 쉬겠다고 한 것이 영영 쉬게 되고 말았다.
뭐.. 인생이란게 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시기에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은 박치숙 선생님의 국어시간과 미술실에서 맡던 테레핀인지 테레빈인지 하는 유화 기름의 송진냄새였다.
2학기부터인가...국어시간은 항상 윤선도의 오우가를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6절까지 있는데... 그 다음은 다 잊어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외웠는데도...-_-
미술선생님은 매우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이면숙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한테서 사군자를 배웠다. 나는 난초와 대나무만을 연습했는데... 그 해 특별활동 전시회인가를 하느라고 표구했던 내 작품(!)이 아직도 우리집 벽에 걸려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묵향보다는 옆에서 맡던 유화 기름 냄새가 떠오른다... 요즘은 좀처럼 맡기 어려운 그 냄새...
그래도 시간이 모든 걸 아름답게 만들어주는구나...
약간은 바랜 빛으로... 뾰족뾰족 날카로웠던 모서리는 둥글둥글 깎이고 닳은 상태로 보여준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계절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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