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에서의 추억 2

글모음/생각 2001/03/19 18:38 PlusAlpha

이건 좀 오래된 얘기지만...
1994년 어느 봄날, 뉴스를 듣다가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18년전 역곡에서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 뉴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뇌사 전공의 장기 6명에 이식

세계일보 1994-04-01 23면 (사회) 판 뉴스 765자

◎서울대­고대병원 심장 원거리이송 시술 “첫 성공”

뇌사상태의 한 젊은 의사지망생의 장기 기증으로 6명이 새로운 삶을 찾게 됐다.
서울대병원 고대안암병원과 구로병원은 30일 뇌사상태에 빠진 고려대 구로병원산부인과 전공의(레지던트) 한주환씨(28)의 심장 간 콩팥 각막을 적출,6명의 환자에게 각각 이식하는데 성공했다고 31일 밝혔다.
서울대병원 노준량박사팀은 한씨의 심장을 확장성심근경색증을 앓아온 이모군(19)에게 이식했다. 이번 이식수술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서울대병원까지 이송소요시간인 3시간동안 완벽하게 냉동보관해 국내 장기이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모교병원인 고대구로병원 최상용박사팀과 안암병원 황정웅박사팀은 말기 간암환자 엄모씨(42), 만성신부전환자 박모군(19)과 정모씨(28)등 3명에게 간과 콩팥 2개를 이식했다.
한씨의 각막은 안암병원 김효명박사팀의 집도로 각막혼탁을 앓아온 김모씨(42·여), 원추각막으로 시력을 잃었던 김모씨(29·여)등 2명에게 각각 옮겨졌다. 현재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은 모두 의식을 회복했다.
한씨는 장기를 기증받지 않고는 살수 없었던 4명의 환자와 앞을 볼 수 없었던 2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과 빛을 주고 일생을 마쳤다.
이번 이식수술은 한씨의 아버지 한정철씨(덕산병원장)가 장기기증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뤄졌다.
한씨는 지난 26일 선배들이 마련한 전공의 진입 축하모임에서 과음 끝에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뇌사상태에 빠졌었다. 한씨의 영결식은 31일 고대구로병원 대회의실에서 산부인과교실장으로 열렸다.<이경현기자>

사랑(장명수칼럼)

한국일보 1994-04-06 05면 (해설) 판 칼럼.논단 1234자

28세로 사망한 의사 한주환씨(고대 구로병원 산부인과)의 장기들이 6명의 환자에게 이식되어 새 삶을 찾게 했다는 기사(한국일보 1일자 31면)를 읽은 후 사랑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는 죽음으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젊은 의사는 3월 26일 레지던트 진급 축하모임에서 과음한 후 구토하다가 기도가 막혀 뇌사상태에 빠졌으며, 그의 장기들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의 부모였다. 역시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한정철씨(덕산병원 원장)는 아들의 몸에서 남에게 이식할 수 있는 모든 장기들을 내놓아 덧없이 간 아들의 생을 장렬하게 마감했다. 젊은 의사의 심장, 간, 2개의 콩팥, 각막은 심근경색, 간암, 신부전증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의 몸 안으로 옮겨져 새 생명체로 결합됐다.
이 세상의 슬픔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식을 앞세운 슬픔이라고 한다. 그 슬픔을 감히 우리가 헤아릴 수는 없다. 단지 우리는 아들의 몸에서 모든 장기를 떼 내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로 한 부모의 결심에서 그 처참한 몸부림을 읽고 있다. 얼마나 아들의 죽음이 원통했으면 아들의 몸을 세상에 내놓아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을 얻고자 했을까.
그 처참한 몸부림 속에서 그들이 적극적으로 세상을 껴안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아깝게 죽은 아들을 추울세라 아플세라 가슴에 묻으면서 아들이 못다 한 인술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아버지도 아들도 의사였기에 그 결정이 더욱 값지게 보인다.
우리는 그 부모에게서 슬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 어떤 절망, 어떤 슬픔,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운명도 결국은 사랑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부모는 실천으로 보여줬다.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하는가, 그 할일 많은 젊은이를 데려가다니 신이 정의롭다면 이럴 수가 있는가 라고 원망하고 또 원망하다가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들의 몸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다.
오늘의 많은 부모들은 내 아이만 공부를 잘하고, 출세를 하면 된다는 자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또 덮어놓고 자녀를 애지중지하여 사랑에 눈먼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 부모들은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아들을 데려가 그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을 때, 한 부모가 보여준 진정한 아들 사랑은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삶에서 뿐 아니라 죽음에서도 크게 배운다. 인생은 덧없지만, 그 덧없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편집위원>

어릴 때 나는 꽤나 잔병치레를 해서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렸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병원 구경 한 번 못해볼만큼 멀쩡하고 건강한 '인간'이 되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역곡에 사는 1년 반 동안에도 단골집처럼 드나들던 병원이 있었으니 바로 오류동에 있던 '덕산의원'이었다.
내과나 소아과인줄 알았던 그 원장님이 산부인과 전공이었다는 사실은 뉴스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그때는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내과 소아과에 해당하는 다양한 환자들이 찾아가는 그동네에서 알아주는 병원이었던 모양인데, 지금도 오류동에서 크게 발전해서 '덕산병원'이라는 종합병원이 되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감기나 뭐 그런 질병으로 어느날 진찰실에서 진찰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나보다 한두어살 더 먹었음직한 조그만 남자아이가 진찰실로 불쑥 들어왔다.
그것도 역곡같은 촌동네에서는 구경해본 적도 없는 태권도복 차림이었다.
그러더니 진찰실이 쩌렁쩌렁 울릴만큼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마치 웅변이라도 하듯 의사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 태권도장 다녀왔습니다!"

웃통을 훌렁 걷어젖히고 청진기로 진찰을 받고 있는 모습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에게 목격당했다는 것과, 생소한 그 아이의 말투와 옷차림...
거기서 느꼈던 당혹감과 위화감은 25년 후인 지금까지 남아있을 정도이니 그 때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아빠...도 아니고 '아버지'라고...?
나만한 어린아이가...?
게다가 저 의사선생님은 머리가 하얀 백발이 아닌가..
저렇게 늙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대강 이런 내용의 충격이었다.

나중에야 그 의사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머리가 일찍 희어졌을 뿐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저 신문기사의 주인공은 바로 그때 진찰실에서 만났던 그 아이였다.
그 의사선생님에게 또 다른 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로 따져 볼 때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 아이가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극적인데, 이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아들의 시신을 남에게 기증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따지고 보면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야기인데도 왜 그렇게 마음이 찡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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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19 18:38 2001/03/1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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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이경 2005/07/30 0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이 글보고;; 넘 놀래서리..제가 오류동옆 개봉동에서 살거든요...저도옛날에 걸어서 덕산병원 많이 갔었거든요..추억의 병원인데..^^; 이렇게 찾아와서 글 읽는 중에 이름이 딱 나와서..굉장히 놀래면서 보고 있답니다..제 동네 친구들 모두 덕산병원 출신들이지요..^^;

  2. PlusAlpha 2005/07/30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니 덕산병원 다니던 시절이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제 기억으론 그 근처에 버들약국하고 버들미용실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다면 감격할 것 같네요... 혹시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