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듯이, 2009년 8월 30일 일본은 제45회 중의원 총선거(第45回衆議院議員総選挙)를 치렀고, 그 결과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지켜보게 된 선거제도.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선거에 관해서는 아주 많이 달랐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69%였다고 한다. 2008년 치러진 한국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비율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부재자 투표”에 해당하는 “기일 전 투표 期日前投票” 제도 덕분이다.
기일 전 투표는 예전의 부재자 투표를 개선하여 2003년 12월부터 실시되었는데 투표 당일에 투표할 수 없는 사람이 일주일 전부터 투표장에 가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부재자 투표처럼 미리 신고할 필요 없이, 그냥 이유를 불문하고 기간 내에 투표소에 가면 미리 투표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투표기간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기일 전 투표소의 수는 투표일 당일의 정규 투표소보다 적지만, 복수의 투표소(가마쿠라시의 경우 3개소) 중 원하는 곳에 가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여,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을 많이 배려하고 있다.
원래 기일 전 투표 제도 자체가 투표율 상승을 바라는 총무성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절차 간소화를 바라는 선거관리위원회, 더욱 이용하기 쉬운 투표제도를 원하는 유권자의 요망이 일치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기일 전 투표를 한 사람이 1400만 명 가까이(유권자의 19.42%)된다고 하니,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남편도, 투표일 당일은 혼잡이 예상되는데다 지정된 투표소는 걷기에는 좀 멀고 주차장도 없어서 교통이 불편하니까, 시청에 마련된 기일 전 투표소에 가서 미리 투표하고 오겠다고 해서, 투표일 전날인 29일에 가마쿠라시청에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
사실 처음에 남편은 바쁘기도 하고 번거로워서 그냥 기권하고 싶다고 했으나, 내가 일본에 세금 내고 살면서도 투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무권자”의 설움을 호소했더니, 본인 의견 50%에 내 몫 50%를 합해서 투표를 하고 오겠다고 해서... 함께 상의하여 투표할 후보자를 결정하고, 나도 투표소까지 따라갔다 왔다.
투표장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표소의 모양이 달라, 독서실 책상 형태로 옆 칸막이만 있고 가림 천이 없었다.
나중에 투표를 마치고 나온 남편에게 물어보니 기표 방식도 전혀 달랐다.
한국처럼 후보자의 이름이 나열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빈 칸에 자기가 투표할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기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좀 놀라웠다.
더더욱 놀란 것은, 유권자는 투표 대상자에게 집으로 배달된 엽서를 지참하고 투표장에 가면 되는데,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고 약간은 허술해 보이는 투표이지만, 아직까지 부정투표와 같은 불상사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투표를 무사히 마쳤다.
이 날 투표장이 있는 가마쿠라 시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가마쿠라역 광장에서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자민당 후보의 유세가 있었는데, 때마침 아소 타로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지원연설을 하러 온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다. 한국에서도 거리 유세를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예정 시간에 시작하긴 했으나 역시 줄줄이 다른 사람들의 인사와 연설이 이어졌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맨 마지막으로 아소 상이 등장했다.
하야시 준이라는 자민당 후보... 36세라는데 젊은 사람이 꽤나 보수적이었다.
민주당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추모시설을 새로 만들겠다고 한 것을 거론하여 비판하며,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가 하면, 외국인을 이민자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세금 걷고 참정권 허용하면 일본은 더 이상 일본이 아니게 된다는 둥... 듣는 외국인 기분 상하는 발언을 마구 해 대었다.
광장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모였고, 바람잡이인지 진정한 자민당 지지자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열성적으로 환호하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도 많아서, 어.. 자민당 지지율 떨어졌다더니 그렇지만도 않은가... 이러다가 자민당 당선하는거 아냐... 했으나, 뭐 결국 떨어졌다. ㅎㅎ
아소 총리가 나와서 사진을 몇 방 찍은 후, “자 사진 다 찍었으니 이제 가자” 라고 돌아서서 나왔더니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ㅎㅎ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본의 선거를 관객(?)의 입장에서 지켜보았는데,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선거보다 차분한 편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범위에서는... 한국처럼 동네가 다 울리게 노래가사 바꾼 트로트 음악을 틀고 돌아다니는 유세차량이나 율동과 댄스를 하는 도우미 군단은 없었다.
54년 만에 이루어냈다고 하는, 세계가 지켜보는 정권교체의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참고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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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바는 꽤나 시끄러웠는데요. 길거리에서 공산당이 어쩌구저쩌구 하고 떠들어대서..^^
그나저나 민주당이 외국인노동자들도 좀 배려하는 정책을 (생각만 하지말고)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램은 있습니다. 개표방송 보다가 옆에 "패 배"라고 적힌 자민당 후보들 사진이 나오는걸 보고 아니 굳이 저렇게 보여줄 건 또 뭐있어? 하면서 같이 보던 사람들하고 좀 웃었다는..한국티비랑 그런 점은 보도방식이 너무 다른듯해요.(좀 유치하기도 하고;;)
오.. 그런가요? 하긴 제가 밖에 잘 안나가봐서 시끄러운 걸 못 본 건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아무튼 길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현수막이나 유치한 가사로 바꿔부르는 선거캠페인송 같은, 한국에서 선거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안 보이니 그냥 차분해 보이더라구요...
후보자들이 거의 모두 머리띠(하치마키) 두르고 다니는 모습에서는 아 여기는 일본이었지 하는 위화감이 좀 들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