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시간을 30분 앞둔 오후 5시경, 갑자기 회사의 사내방송용 스피커에서 경보음이 흘러나왔다.
평소 이런 저런 방송을 종종 하고 있어서 또 뭔가 방송을 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듣기에 불쾌할 정도의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를 잘못 만져서 생기는 잡음인 줄 알았다.

그러더니 안내음성이 들렸다.

“긴급 지진 속보입니다. 진도 4!  30초 전!”

나는 놀라서 “어어...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다들 침착하게 책상밑으로 기어들어가 쪼그리고 있는다. 개중에는 신속하게 헬멧까지 챙겨 쓰는 사람들도 있다.
전 직원에게 방재용 헬멧이 지급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헬멧이 있지만 그걸 찾아서 쓸 경황이 없었다.

“20초 전.”

“10초 전.”

10초부터는 카운트다운을 한다.

9, 8, 7, 6...

책상 밑에서 얼마나 세게 흔들리려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기다렸는데 0까지 카운트를 하고도 이렇다 할 흔들림은 느끼지 못했다. 조금 지난 뒤 모두들 허탈과 안도가 뒤섞인 얼굴로 책상 밑에서 나왔다.

당장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후쿠시마현에서 진도4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나온다.
후쿠시마현이면 요코하마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곳의 진도는 1 정도였다고 한다. 진도 1이면 예민한 사람 아니면 흔들림을 느끼기도 어려울 정도...

조금 뒤 진짜 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방금 있었던 긴급 지진 속보는 테스트나 오작동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기상청에서 신호를 받아 작동된 것이라고. 그러니 (여진이 있을지도 모르니) 계속해서 경계하라고.
휴대전화를 꺼내보니 여기에도 속보 메시지가 도착해 있다.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구나 하는걸 새삼 실감했다.
긴급 지진 속보는, 지진 발생 직후 진원에 가까운 지진계에 관측된 데이터 해석을 통해 진원과 지진규모를 즉시 추정하여 각지에 지진이 도달할 시각과 진도를 예측하여 최대한 빨리 알리고자 하는 예보 및 경보이다.1
TV, 라디오 방송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나 방재행정무선을 통해 전달하고 긴급지진속보 전용 단말기도 있다고 한다. 직장에 설치된 것이 전용 단말기인듯 하다.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일본이지만 그 대비는 한국에서는 보도 듣도 못했던 부분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철저하다.
회사에 설치된 캐비넷 등 쓰러질만한 가구는 전부 벽이나 바닥에 고정시켜서 지진이 나도 바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밖에도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세세한 부분까지 지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

이번 긴급 지진 속보 소동(?)을 통해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지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본에 있다고 해서 지진을 두려워하며 살 필요는 없겠다는 안도랄까...
다음번에 또 지진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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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23:08 2010/09/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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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팔 2010/09/30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에 대해 별 아는봐가 없던차에 굽이굽이 돌아 PlusAlpha 님의 블러그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네요.

    일본에서 사시면서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 부터 폭넓은 이야기까지 진솔한 이야기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자주들려 좋은 세상 이야기 듣겠습니다.
    저는 미쿡위 개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

    • PlusAlpha 2010/09/30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팔님 반갑습니다.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종종 용팔님 블로그 들러볼게요. 캐나다 소식도 많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