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휴

일기 2008/05/12 23:51 PlusAlpha

그날 평소와 달리 평화롭고 조용한 것이 어째 좀 불안하다 했다.
오랜만에, 지금 이 상태로만 지냈으면 하고 느낀 그 날, 퇴근길에 아랫층 욕실에 물이 새는 관계로 우리집 욕실을 다 뜯어내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방 밖에 있는 가구와 짐들을 모두 방 안으로 들여놓고 3박 4일간 집을 비워야 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들이 떼로 밀려왔다.
잠자리 바꾸는 일, 양군이에게 스트레스 주는 일, 나 없는 사이 내 집에 낯선 사람을 들이는 일, 무거운 짐 옮기는 일, 집안을 시멘트먼지 구덩이로 만드는 일...
우울하고 심란했다.
아랫층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아무 죄없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건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홧김에 수원에 새로 개장한 유명그룹 체인의 호텔방을 3박 예약해버렸다. 그나마 호텔에서 누리는 호사로 우울함을 극복할 셈이었다.
양군이 맡길 곳 찾아 삼만리 하다가 호텔에서 가까운 친척집에 부탁했다. 그래야 가끔 가 보기도 좋을 것 같아서...
양군이는 데려가자마자 낯선 곳, 낯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때문에 침대밑 구석에 쳐박혀서 나오지 않고 사흘동안 쫄쫄 굶었다.
겨우 조금 적응해서 침대밑을 벗어나게 되자 집으로 데려오는 날이 되었다.

공사가 끝난 지난 토요일, 일단 집에 들러 청소를 하고, 하룻동안 욕실을 쓸 수 없다고 해서 호텔로 돌아왔다가 일요일에 양군이를 찾아 완전히 귀가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저런 정리로 하루를 보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최고의 날씨의 황금같은 3일 연휴가 이렇게 날아가 버렸다.

6월에 있는 또 한 번의 3일 연휴는 바로 그 다음주에 있을 초대형 행사 준비로 휴일근무를 하지 않으면 감지덕지 해야 할 상황이라 마음편히 지내기는 또 글렀고...
아... 진짜 갑갑하다... 난 아무 욕심 없는데... 그저 아무 사건 없는 평온한 날들을 원할 뿐인데...ㅜㅜ

어쨌거나... 뒤집어 놨던 집안을 원상복구하고 났더니 살 것 같다.
좁고 낡은 아파트이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집이 최고다.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마음놓고 밥 먹고 편안히 누워 잠자는 모습을 보니, 양군이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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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2 23:51 2008/05/1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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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5/14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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