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2 13 개성 방문기

글모음/여행 2008/02/24 20:52 PlusAlpha

생각지 않게 개성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녀왔다.
개성 관광은 아니고 "개성공업지구" 시찰로 떠난 일종의 출장이었고, 당일 방문이었기 때문에 별로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에 다녀왔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여행(?)이었다.

임진각을 거쳐 도라산 "도로남북출입사무소(CIQ1)"에 들러 출경2(出境) 절차를 거치고 나서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니 불과 10여분만에 개성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아니... 이렇게나 빨리 도착하다니...) 이때가 오전 10시 40분.
그쪽 건물은 한 눈에 봐도 우리쪽에서 지어준 것이어서 건물 자체에서는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인민군 군복을 입은 심사관과 "신속호구", "녀자호구" 같은 낯선 말이 낯선 글씨체로 적혀 있는 입경수속대의 팻말을 보니 이곳이 북한땅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신속호구는 VIP용, 즉 통일부 또는 개성공단관리사무소나 현대아산 관계자 등이 검색을 생략하고 통과할 수 있는 검색대이고, 녀자호구는 여성 검색관이 몸수색을 하는 검색대이다. "호구"는 "戶口"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확실치는 않다.
한국을 때날 때는 여권 대신 통일부가 발행한 "방문증명서"를 제출하여 바코드 스캔을 하고 스탬프를 찍는 것으로 간단하게 심사를 받았는데, 북한에서는 방문증명서로 이름을 확인 한 후 방문자 명단이 빼곡이 적힌 A4용지 몇 장에서 이름을 찾아내어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치는 방법으로 심사를 했다.
이름을 찾는 것도 종이 여러장을 뒤적여가며 어렵게 찾기에, 나는 심사대 안으로 넘겨다보고 내 이름을 찾아 짚어주어 금방 끝났는데, "이"씨 성을 가진 다른 일행들은 명단에 이름이 없다며 통과하지 못하고 대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알고보니 이씨를 "리"씨로 쓰는 북한의 언어습관때문이었다고 한다.
X선 검색대에서는 내 가방안에 들어있는 카메라를 보고 검색하던 인민군 아저씨가 나보고 "이거 디카예요?"라고 물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북한사람에게서 디카라는 용어를 듣다니... 재미있었다.
북한에 들어갈 때는 휴대전화, MP3/PMP플레이어, 필름카메라, 고배율 줌 장착 카메라, USB메모리 등등 휴대금지물품이 많은데 의외로 디지털카메라는 허용을 해주었다. 나올 때 카메라 화면을 일일이 넘겨가며 확인하여 찍어서는 안되는 장면이 있는 경우는 그자리에서 삭제를 하고 돌려준다.

먼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가서 간략한 브리핑을 듣고 홍보동영상을 관람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월 최저임금이 50달러 남짓, 평균 70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 돈을 주고 주48시간이내의 노동을 시킨다는 것에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다른 직장보다 좋은 환경이겠지만...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과 "훼미리마트 개성공업지구점", "그린닥터스 협력병원", "소방서", "한국전력 개성지사"를 차례로 방문한 뒤에 차를 타고 7~8분쯤 걸려 "봉동각"이라는 북한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사실 북한에 가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었는데, 결론은 대실망이었다.
식당 건물 자체가 매우 허름하고, 로비라고 하기엔 초라한 입구에는 창문도 없는데 불을 꺼놓아 어두컴컴해서 많이 놀랐다.
홀에는 몇 가지 음식이 세팅되어 있었는데 식탁이나 분위기가 30여년 전의 시골 식당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촌스러웠고, 음식들도 볼품이 없었고 맛도 낯설어서 맛있게 먹기가 어려웠다.
그냥 보기만 해도 추워보이는 비치는 여름 한복을 입은 여자 종업원 여러 명이 음식 서빙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들이 무대에 차례로 올라가 하나씩 공연을 했다.
"반갑습니다" 노래를 시작으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한 30분 정도 공연을 했는데, 방송으로 봤던 북한공연 그대로여서 큰 감흥은 없었다.
조명이 안되어 어둡고, 음식은 맛없고, 난방도 잘 안되어 춥고... 하니 공연까지도 눈에 둘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고 나오면 다시 로비의 진열대에서 미국달러를 지불하고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수십명이 와글와글 기념품 구경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불을 켜지 않았다. 물건도 제대로 안보이는데다 별로 구미를 당기는 물건이 없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그 다음은 현대아산 사무소에 들러 브리핑을 듣고, 옥상에 올라가 개성공단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고나서, 문창기업이라는 의류제조업체에 들러 공장의 작업광경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남측3 CIQ로 돌아온 시각이 오후 3시.
불과 몇 시간의 방문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특이한 여행이 되었다.
북한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철조망을 몇 개씩 넘어야 갈 수 있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다녀올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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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미리마트 안의 상품은 남한의 물건 그대로이다. 유통화폐가 미국달러여서 가격표도 달러로 적혀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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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유명한 송악산. 배 나온(임신한)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이라 한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인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런거 올려도 되는지... 사이즈 확 줄여서 소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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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Custom, Immigration, Quarantine의 약자라 한다.
  2. 이 경우 출입"국"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출입경이라는 표현을 한다고 한다.
  3. 남한, 북한이라는 표현은 북에서 매우 싫어한다고, 반드시 남측, 북측이라고 해야 한다고 사전교육(?)을 받고 갔다.
2008/02/24 20:52 2008/02/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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