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분실 소동 2

일기 2002/06/19 11:28 PlusAlpha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도착해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가방에 열쇠가 없었다. 아무리 뒤져도 열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쓰는 열쇠들을 같이 매달아놓은 그 열쇠꾸러미를 사무실 책상에 놓고 온 게 분명했다.
여벌의 열쇠는 집 안에 있다. 사무실까지 도로 가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왕복하려면 세 시간은 걸릴 것이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머리속에서 다음 단계가 척척 떠오르고 있었다. 다음 단계란 다름아니라 열쇠가게에 전화하는 것이다.
현관문에 떼어내는 족족 다시 덕지덕지 붙여놓아 매일 귀찮고 짜증스럽게만 생각했던 광고스티커가 이번에는 얼마나 반갑게 느껴지던지...
전화하고 나서 한 5분쯤 지나서 커다란 공구상자를 양손에 든 키맨이 도착했다.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를 기대했는데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 막상 그 사람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불안해졌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내 방문을 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혹시 키맨을 가장한 강도라면 어쩌나... 이 사람은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흉기도 지니고 있고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으니 나쁜 맘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강도로 돌변할 개연성이 있어...'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면서 무서워졌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도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문도 열어야겠으니 어쩔 수 없다.
현관문 자체의 손잡이에 달린 자물쇠와 그 위에 붙어있는 보조키까지 잠갔기 때문에 두 개를 열어야 한다.
현관문에 달린 자물쇠는 가느다란 철사 같은 것으로 2~3분만에 너무도 쉽게 철컥 열었다.(이럴 수가...) 여는데 만 원.
보조키는 보더니 이건 좋은거라서 열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무슨 짤막한 쇠막대기를 열쇠구멍에 넣고 마구 두드려대기도 하고 전동드릴을 꽂아 드르륵드르륵 돌리기도 하고... 이러다가 다 망가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여러가지 무리한 작업을 10여분동안 한 끝에 간신히 열었다. 이만 원.
아무래도 찜찜해서 다 끝내고 가려는 사람을 붙들어 놓고 집에 있던 여벌의 열쇠를 가지고 나와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시험을 해봤더니, 아니나다를까... 잠그고 여는 것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드리고 쑤셔댔는데도 멀쩡하다면 이상한거지...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이번에는 보조키 자체를 문에서 아예 떼어내어 분해하더니 뭔가를 한참 만져서 간신히 고쳤다.
문을 열어놓고 하다보니 집안이 다 노출되어서 가뜩이나 못마땅한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은 느물느물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나더러 "목이 마르니 마실것좀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하고... -.-
나의 부주의 때문에 안써도 되었을 돈 삼만 원을 억울하게 날렸고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또 겪고 말았다.

지난번 사무실 책상열쇠를 집에 두고 온 사건과, 집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가 기억나지 않아 걱정하며 도중에 집에 돌아온 사건에 이어 이번에 열쇠와 관련된 실수담 세 번째이다. 세가지 사건 모두 조금만 부주의하면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안해본 바 아니지만, 정신차리고 열쇠 꼭꼭 챙기고 문 꼭꼭 잠그는 것 외에는 별로 뾰족하고 마땅한 대책이 없어서 그냥 하루하루 지내는 사이에 결국 일어나고 만 것이다.

이제 열쇠와 관련된 실수는 할만큼 다 해본 셈이다. -.- 부디 이번 일이 내 인생에서 열쇠와 관련된 실수담의 마지막편이었기를 바란다.
매사에 방심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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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9 11:28 2002/06/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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