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첫 장면

글모음/생각 2000/10/11 09:32 PlusAlpha
나는 운좋게도 생생한 기억의 첫 장면을 갖고 있다.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절대 잊혀지지 않고 날짜까지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1972년 7월 13일. 내 나이 만2살하고 6개월이 조금 넘은 때였는데 이 날은 바로 내 동생이 태어난 날이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엄마 곁에서 잠을 자고 있 었는데 한밤중에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소리를 들었고 곧 고모들 손에 이끌려 다른 방에 가서 잤다.
그 당시 우리는 시골에 살고 있었던데다 나나 동생이나 모두 새벽에 태어나는 바람에 병원이 아닌 집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삼촌, 고모들 3명 등 대가족이었다. (동생이 태어남으로 해서 열 식구가 되었다.)

잠을 좀 더 자고 아침에 깨어나보니 고모들이 나에게 아기가 태어났다고 얘기해 주었다.
엄마가 있는 방문 앞으로 가서 방금 태어난 아기를 보았다.
아빠가 아기를 안고(정확히 말하면 엉거주춤하게 들고) 있었다.
아기는 눈도 뜨지 못했고 온몸에 피가 묻어있었다.
어른들이 부산하게 왔다갔다 했고 얼른 더운 물을 가져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물을 가져 오기 전에 탈지면으로 아기의 눈 부분을 먼저 닦아주던 모습도 기억난다.

고모들은 그 무렵까지도 엄마의 빈 젖을 빨곤 했던 나에게 이제 동생이 태어났으니 젖은 동생에게 주어야 한다고 너는 더이상 아기가 아니니 이제 젖은 먹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수긍하고 동생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이제 더이상 집안에 하나뿐인 귀염둥이 아기가 아니었고 항상 동생을 돌보고 귀여워해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 '누나'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의무에 아주 충실한 착한 누나가 되었다.
적어도 동생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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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11 09:32 2000/10/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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