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조금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체하는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바늘로 손가락을 따 주셨다.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그게 즉효약이어서 약을 먹지 않고도 바로 나았다.
나중에 무통사혈침(볼펜 모양으로 생겨, 스위치를 누르면 순간적으로 자동으로 찔러주는 침)이라는 걸 입수하고 나서는 더욱 손쉽게 혼자서도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 오면서도 무통사혈침은 물론이고 일회용 바늘 카트리지까지 한 상자 사서 가져왔다. 소량 단위로 판매하지 않는 관계로, 현재의 사용빈도라면 평생을 쓸 수 있는 만큼의 양을 가져와서 마음이 든든하다.^^
오늘도 회사에서 오전부터 심한 체증으로 답답한 속과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하루종일 시달리다가 간신히 집에 와서 내 손으로 손가락을 땄더니 정말 5분만에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나았다.
근데 남편이 그 광경을 보고는 컬쳐쇼크를 느낀 모양이다. 무슨 미개인의 무속신앙을 바라보듯 한다. 일본에는 손을 따는 습관(?)이 없다 보니 일부러 피를 내어 병(?)을 치료하는 모습은 매우 낯설고 엽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여 납득시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일본어에는 “체하다”라는 말 자체가 없으니... 그것부터 설명이 안된다. 기껏해야 “소화불량”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데... 단순한 소화불량과 체한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신뢰해 주는 남편이지만 이것만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내가 나은 걸 보고도 플라시보 효과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통사혈침은 내게 소중한 물건이다. 그래도 남편이 자기가 아플 때 자기 손을 따는 건 사양하지만, 내 손을 따는 것까지는 말리지는 않겠다니 고마울 따름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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